"과거엔 선물을 주고 받는게 관행이었지요. 많을 땐 이웃에 나눠 주고도 남아돌 때가 많았으니까요."


구학서 (주)신세계 사장(56)은 지난 추석 때 선물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인심을 잃어서가 아니다.


선물을 보냈다간 거래중단이나 징계를 당할까봐 협력사나 직원들이 아예 보내지 않아서다.


구 사장이 명절이나 연말연시를 앞두고 '윤리경영 협조공문'을 보낸게 벌써 3년째.


그 효과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라는 걱정으로 '성의'를 표시한 일부 협력사는 어김없이 선물을 되돌려 받았다.


구 사장은 신세계 다른 임직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구 사장이 '고객제일'이던 회사의 경영이념을 '윤리경영'으로 바꾼 것은 지난 99년.


그 때만 해도 "선물을 장려해야 할 유통업체가 이래도 되느냐"는 볼멘소리가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뇌물과 향응은 말할 것도 없고 볼펜 한 자루도 받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그는 사장 직속의 '기업윤리실천사무국'을 설치하는 한편 인터넷에 윤리경영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무기명으로 각종 제보를 받았다.


금품과 향응을 주고 받은 사실이 적발되면 누구든 퇴사시켰다.


그런 이유로 3~6개월간 거래가 끊긴 협력업체도 한 둘이 아니다.


"사내에선 윤리경영이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일부 파트너사(협력업체)는 아직도 명절 선물이나 축의금을 돌리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구 사장이 윤리경영을 중단없이 전도해야 하는 이유다.


"갑(甲)이냐 을(乙)이냐 하는 의식부터 버려야 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갑과 을을 따지는 기업은 결코 투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통업체는 수 천개의 파트너사와 공존합니다. 갑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면 개인에게는 도움이 될 지 몰라도 회사에는 손해가 될 뿐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개인에게도 큰 손해지요. 아직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갑과 을의 개념는 하루 속히 사라져야 합니다."


개인의 비윤리적 행위는 회사 원가에 부담을 안겨줄 뿐 아니라 결국 소비자들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간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회사 곳곳에서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계약서의 '갑'과 '을'이라는 용어는 모두 '구매자'와 '공급자'로 바뀌었다.


협력업체를 '파트너사'로 바꾼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정기적으로 협력사를 상대로 무기명 설문조사를 실시해 신세계의 청렴도를 체크하기도 한다.


신세계는 그동안의 윤리경영의 성과를 정리한 백서를 발간했다.


다른 기업들이 앞다퉈 이 책을 구해 윤리경영의 지침서로 활용하고 있다.


이 백서를 경영학 교재로 사용하겠다는 대학의 문의도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겠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투명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자세입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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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1946년 경북 상주생

<> 70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 72년 삼성전자 경리과 입사

<> 77년 삼성그룹 비서실 관리팀 과장

<> 79년 제일모직 본사 경리과장

<> 82년 삼성물산 도쿄지사 관리부장

<> 86년 삼성전자 관리부 부장

<> 88년 삼성전자 관리담당 이사

<> 96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전무

<> 98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사장

<> 99년 신세계 대표이사 부사장

<> 2001년 신세계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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