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협회가 오랜만에 '집안'단속에 나섰다. 1백여 회원사들의 윤리의식을 제고하고 투명한 벤처투자문화를 확산시키자는 차원에서 최근 윤리위원회를 신설하고 '벤처캐피털 윤리강령'을 선포한 것이다. 협회측 얘기대로 "업계 최초로 윤리강령을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춰 윤리의식을 높이겠다는 의지도 평가할 만하다. 그동안 이런 식의 노력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6개월여 동안 준비했다는 강령의 시행세칙을 살펴보면 약간 실망스럽다. '각종 법규를 준수하고 투자기관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자''중소·벤처기업을 적극 발굴해 육성하자'는 두루뭉수리한 문구로 채워져 있어서다. 물론 법률을 제정하는 것도 아닌데 아주 세부적인 경우까지 생각해 규정을 만들기가 어려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윤리규정 제정을 논의하게 된 게 벤처비리를 예방하자는 취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행사가 너무 형식에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벤처캐피털업체 관계자는 "굳이 윤리강령을 정한다면 업체 스스로 만들어야지 협회가 제정한 '윤리강령'이 무슨 효력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공허한 윤리강령 제정보다는 회사와 투자심사역의 동반투자 금지조항을 명시하는 등 좀더 구체적인 규정제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2년여전까지만 해도 벤처캐피털은 벤처붐에 편승해 호황을 누렸다. 벤처캐피털도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 그러나 '벤처열기'가 식으면서 벤처캐피털 중 상반기에만 13개업체가 자진해 등록취소를 신청할 정도로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그나마 현재 남아있는 1백30개 벤처캐피털 중 정상적으로 영업(투자)하고 있는 업체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이같은 상태에서 윤리강령이 제정되자 몇몇 벤처캐피털들은 발표 시점에 대해서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모처럼 이뤄진 벤처캐피털업계의 '윤리강령' 제정이 여러 모로 아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손성태 벤처중기팀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