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증권사 주식인수팀장인 K씨는 최근 한 벤처기업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자본금 6억원에 매출 30억원,1억원 남짓의 순이익을 내고 있는 벤처기업인데 어떻게 하면 코스닥시장에 등록할 수 있느냐고 물어온 것.올해부터 코스닥 등록 심사가 대폭 강화됐는데도 이런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온다는 게 K씨의 설명이다. 자본금이나 매출액 규모,업력 등 기본요건을 면제해주는 벤처기업 특례조항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느슨한" 진입 요건이 코스닥시장을 망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벤처기업의 젖줄"역할에 치우친 나머지 검증되지 않은 기업이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유통시장을 멍들게 하고,그에 따라 발행시장까지 얼어붙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잇고 있다. ◆벤처검증은 이렇게=조만간 코스닥시장에는 변변한 기업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싹트고 있다. '탈(脫) 코스닥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시가총액 8위의 간판 IT(정보기술)기업인 엔씨소프트가 거래소행을 발표,우려감을 키웠다. 엔씨소프트는 "주주들이 '코스닥을 떠나라'고 재촉했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공정경쟁이 불가능한 시장으로 회사측이 보고 있다는 뜻에서다. 현재 일반기업과 벤처기업은 코스닥 등록을 위해 구비해야 하는 기본요건이 다르다. 벤처기업의 경우 지난 7월 생긴 '자본잠식규정'을 제외하면 실상 제약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벤처'로 승인받으면 누구나 코스닥시장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증권 조장식 이사는 "벤처기업도 업력이 2년 정도는 되면서 이익을 내는 '될성 부른' 업체를 진입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기업은 자본금 5억원 이상 등 나름대로의 요건을 충족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이러한 등록요건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또다른 비판을 사고 있다. ◆질적심사의 형평성도 문제다=기술력과 사업성,지배구조 등을 점검하는 질적심사가 강화된 지난해 말부터 등록한 기업들은 대체로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로비가 작용하는 '밀실심사'라거나 기준이 모호하다는 논란이 없지 않다. 실제로 한빛전자통신은 올해 등록된 지 5개월 만에 퇴출돼 심사의 투명성에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업계 관계자는 "질적심사의 강도가 높아진 것은 바람직하지만 얼마나 객관성이 있는지가 문제"라며 "사소한 결점을 트집잡아 자격이 적합한 기업도 퇴짜를 놓는 경우가 꽤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코스닥위원회 등록심사부 25여명의 인원으로 연간 3백개에 달하는 심사청구기업을 평가하는 게 물리적으로 무리라는 지적은 이래서 나온다. 질적심사의 '질' 자체를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