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주재한 월례 은행장 간담회(금융협의회)에 은행장들이 무더기로 불참한데 대해 말들이 많다. "한은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는가 하면 한편에선 "바쁜 은행장들을 모아놓고 훈시해야만 직성이 풀리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은의 위상이 새삼 더 추락하지도,한은 총재가 일장훈시로 '지도'하지도 않은 듯하다. 그럼에도 한은에선 분개하고 은행장들은 썰렁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있다. 우선 불참자들의 이유를 보면 일부러 안나왔다고 보긴 어렵다. 감사원 감사로 경황이 없거나(산업은행),해외출장(제일 농협),지방 행사(기업 한미)로 서울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참석키로 했던 서울은행장만 안나왔을 뿐,외국투자자와의 면담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던 국민은행장은 모양이 나빠질까봐 잠시 얼굴을 비치기도 했다. 회의에 들어가서도 은행장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박 총재가 "은행장들이 한은과 사이가 나빠 안나온다고 보도됐던 데 동의하십니까"라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어 더 어색해지기도 했다. 은행장들은 한은의 여론조성용 행사에 동원된 듯한 느낌이라는 게 불만의 요지다. 한 은행장은 "지난달 금융협의회 뒤 한은이 일방적으로 '은행장들이 금리인상에 공감했다'고 발표했다"며 "오늘 불참한 은행장들도 사정이 있다지만 솔직히 나오기 싫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은측은 "의결하는 자리가 아니라 의견을 나누는 자리"라며 "사정이 있어 불참한 것을 너무 확대 해석하지 말아달라"고 언론에 주문했다. 회의 뒤 발표자료도 행사 사실만 간략하게 알렸다. 이번 해프닝은 서로간의 '사소한 오해'일 수도 있고 '심각한 갈등'일 수도 있다. 한은은 옛 은행감독원이 떨어져 나간 뒤 은행들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든 탓이라고 여긴다. 단지 그런 이유 뿐일까. 돈 장사를 하는 은행이 금리결정권을 가진 한은을 우습게 볼 리 없다. 말로만 금리를 올리겠다고 해놓고 정작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데 더 실망한 것은 아닐까. 한은이 만약 백악관의 금리인하 압력에 거꾸로 금리를 올린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같은 모습이었다면 어땠을까. 오형규 경제부 정책팀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