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기와 체감경기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나타나고 있다. 지표로 나타나는 실물경기는 여전히 양호한 모습이지만 기업과 소비자들은 오히려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주체들의 심리는 투자 소비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경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다. 심리지표가 급속히 악화되는 것은 경기침체 가능성을 암시하는 적신호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국내외 주가 폭락과 세계경기 동반 하락 가능성, 디플레(물가 하락) 우려 등 불확실한 요인들에 너무 과민반응한다는 지적도 있다. ◆ 양호한 실물경기 지표 각종 경기지표만 보면 국내 경기는 걱정할게 별로 없어 보인다. 지난해 말 이후 경기회복 추세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중 산업생산은 전년 대비 8.5%, 도소매판매는 6% 각각 증가했다. 설비투자는 부진한 편이지만 6,7월 감소세에서 8월 1.3% 증가세로 돌아섰다. 서비스업도 8월중 7.9% 늘었고 수출은 최근 3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중이다. 실업률도 2.9%(8월)로 안정적인 모습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3.4분기중 경제성장률(GDP 증가율)이 전분기와 비슷한 6.3%선에 이른 것으로 추정했다. 박승 한은 총재는 "소비와 수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산업활동도 활발해 경기회복이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얼어붙는 체감경기 지표상으론 탄탄한 회복세인데 호황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외요인에 의해 경기 회복세가 꺾일 수 있다는 불안감 탓에 심리지표는 되레 얼어붙고 있다. 통계청이 조사한 9월 중 소비자평가지수(97.2)와 소비자기대지수(103.9)는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현재와 6개월 뒤 경기 수준이 매우 낮다는 얘기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전경련이 조사한 3.4분기 설비투자 실사지수(106)는 전분기에 비해 4포인트 하락했다. 한은 산업은행 대한상의 신용보증기금이 각각 조사한 설비투자 실사지수도 한결같이 4.4분기에 더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담고 있다. ◆ 지나친 불안은 금물 경기지표와 체감경기 사이에 괴리가 커진 것은 무엇보다 최근까지 연일 국내외 주가가 폭락했던 탓이다. 여기에 이라크사태와 가계대출 억제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등이 겹쳤다. 선진국 경기는 한결같이 안좋은 소리만 들리는데 국내 경기만 호조라는 것이 왠지 불안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센터소장은 "소비가 다소 둔화되더라도 수출이 늘고 있어 4.4분기 국내 경기가 급락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앞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심리적인 위축과 이라크전쟁 등 불확실성 때문에 체감지표가 급속히 나빠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