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7월 경제관리 개선조치에 이어 신의주 특구를 지정하는 등 개방정책 추진하던 중 핵개발 계획을 시인하고 나서 충격을 주고 있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발언을 한 배경을 두고 국제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또 북.미,남.북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북핵 문제가 북한의 개혁.개방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도 관심이다. 한국경제신문은 18일 김수섭 정치부장의 사회로 대북 전문가인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와 신지호 한국개발연구원(KDI)초빙연구위원,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연구위원을 초청,긴급좌담회를 열어 이 문제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 참석자 ] 고유환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신지호 < 한국개발연구원(KDI) 초빙연구위원 > 조명철 <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 > 김수섭 (사회) ----------------------------------------------------------------- ◆사회=북한이 신의주 특구 지정을 비롯한 개혁개방 조치를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핵개발 프로그램 시인이란 암초를 만났다. 핵 개발을 왜 추진했으며 뭘 노리고 시인한 것으로 보는가. ◆조명철 KIEP 연구위원=북한은 1994년 핵합의 이후 미국과의 관계에서 얻은 것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이다. 경수로도 원래 약속대로라면 내년에 완공돼 가동돼야 하는데 진척도가 25∼26%를 밑도는 정도다. 경제 제재도 클린턴 행정부 시절 두번 정도 완화했지만 내용을 보면 여전히 이전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부시 정권이 들어서며 기대했던 것과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나 오히려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인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은 체제보장과 안보유지를 위해 핵을 개발하려 했다. 사회주의가 붕괴된 이상 유일 패권국인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북한 생존의 중심고리다. 그런데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미협상이 타결 직전 무산됐고 부시 행정부는 원점에서 다시 하자고 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내부적인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남북관계 원상회복과 북·일 정상회담을 거쳐 워싱턴으로 가겠다는 우회작전을 폈다. 그 과정에서 북·미대화는 뒤로 밀렸다. 때문에 이번 켈리 특사의 방북 때 대량살상무기 등 우려사항에 대한 개선 없이는 관계 개선도 없다는 통첩성 메시지를 보낸 것 같다. 북한은 이에 대해 자위 차원이나 대응수단으로 핵개발 능력을 과시했는데 미국은 그것을 개발로 확대 해석한 것 같다. ◆신지호 KDI 초빙연구위원=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다. 켈리 특사가 평양에 가서 2박3일 동안 많은 얘기를 했는데 그 중 일부분만 공개했다. 그것도 어떤 문맥에서 나왔는지 거두절미하고 내용만을 부각시켰다. 켈리 특사가 한국 정부에 충분히 얘기를 안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추론을 해볼 수밖에 없다. 북한은 그간 핵문제에 대해선 'NCND(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음)'로 일관했다. 이번에도 잡아뗄 수 있었을 텐데 왜 시인했을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뭔가 '빅딜'을 하자는 차원에서 이런 프로그램도 갖고 있다고 시인하지 않았을까 판단된다. ◆사회=미국이 긴장하고 있는데 북한이 핵무기를 만드는 기술은 어느 정도나 되나. ◆조 연구위원=핵개발 계획의 목표는 에너지와 무기다. 북한은 핵개발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첫째 우라늄 광산이 적지 않아 원료가 무진장이다. 둘째 기술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정설이다. 과거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 핵전문가들이 양성됐다. 기타 기계나 컴퓨터 분야 전문가도 육성되어 있다. ◆신 연구위원=북한이 핵개발을 시인했다는 건 문제해결을 서두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제2의 이라크가 되는 것을 회피하고 미국을 적극적으로 대화테이블로 끌어들여 빠른 시일내에 협상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조 연구위원=체제 보장을 해주면 개혁개방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핵으로 간다는 두가지 가능성을 미국에 제시하는 것 같다. 미국도 뒤처지지 말고 동참해 달라,그래야 나도 변하겠다는 메시지가 동시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본다. ◆고 교수=북한은 미국과 어느 정도 관계 진전을 이루지 않고는 남북관계 북·일관계 다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미국은 핵미사일 생화학무기 인권문제 등 다섯가지 의제를 한꺼번에 해결하자고 나오고 있다. 북한은 이게 정상적인 국가 대 국가간 타협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에 대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미국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핵개발 프로그램을 얘기한 것 같다. ◆사회=북·미 관계는 어떤 양상을 보일 것으로 보는지. ◆신 연구위원=미국 일각에선 이라크와 북한의 두 개 전선을 형성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에 대한 좋지 않은 국제 여론을 의식해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로 해결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대이라크전으로 실추된 외교적 이미지를 북한과의 대화로 만회하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 문제에 관해 미국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 한·일과 협의해야 한다. 특히 일본의 자세가 과거와 다르다. 북·일 정상회담으로 일본도 북한 문제에 발을 깊게 들여놓은 상태다. 이것이 북·미 관계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고 교수=이번에 미국이 북한 핵을 문제삼는 것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견제와 시간벌기용이 아닌가 판단된다. 미국은 대이라크전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북한에 과도한 요구를 해놓고 시간을 좀더 끌어보자는 의도인 것 같다. 또 최근 한국과 일본이 북한과 급속히 가까워지는 데 대한 견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북한 핵 문제가 남북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신 연구위원=남측은 핵문제 해결을 북한에 촉구하면서도 진행되고 있는 남북 회담은 지속시키겠다는 입장이나 내부 여론이 안 좋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선 교류 후 긴장완화'가 핵심인 햇볕정책에 대해 강력한 문제제기가 있을 것이다. 여하튼 북핵 문제는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고 그 타결 방법으론 지난 4월 임동원 특사의 방북과 같은 새로운 접근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고 교수=현 정권 말기에 대북 관련 추진력이 점차 떨어지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가 터졌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상당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기존의 남북 합의 사항 이행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조 연구위원=현 정부의 대북정책 수단들이 옳으냐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하는 상황으로 갈 수 있다. 대화와 협력은 우선순위에서 북핵 문제보다 밀릴 수 있다. ◆신 연구위원=북핵 문제를 보혁논쟁으로 끌고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햇볕정책의 우선순위 설정에는 문제가 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류 활성화를 먼저 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었다. 정리=홍영식·윤기동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