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료를 담합해서 인상했다는 이유로 11개 손보사에 과징금을 매긴 공정거래위원회의 행정조치는 잘못이라는 서울고법의 판결이 내려졌다. 손해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료를 일괄 3.8%씩 인상한 것은 금융감독원의 행정지도에 의한 것일 뿐 업자간 담합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요지다. 재판부는 "보험료 인상 내역과 국내 보험업계의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더라도 원고들 사이에 공동행위(담합)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설명까지 덧붙이고 있다. 보험업계의 담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의 결과나 외형뿐만 아니라 업계의 현황과 가격구조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으로 지극히 당연한 판결이었다고 본다. 공정위는 고법의 이번 판결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공정위가 시정명령을 너무 쉽게 내리고 자의적으로 과징금을 매긴다는 지적을 듣고 있는 터다. 공정위는 작년 11월에도 맥주 3사의 가격인상에 대한 과징금 처분 관련 재판에서 패소한 바 있다. 맥주 3사의 가격조정 역시 재경부의 지도에 따랐던 것으로 따지고보면 이번과 동일한 사례였다. 재경부나 금감원의 행정조치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면 이는 부처간 협의를 통해 풀어야 할 문제일 뿐 엉뚱하게도 정부의 지도를 따른 기업에 과징금을 매길 수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한 일이다. 한쪽에서는 행정지도를 따르라 하고 다른 쪽에서는 수십억원대의 과징금을 매기기로 한다면 기업들은 과연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 것인가. 정부가 물가관리 혹은 기타 행정상 목적을 내세워 과도한 행정지도를 펴는 것도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기업을 상대로 공정위가 무더기 과징금 처분을 내린다면 이는 더더욱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십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고 이의를 제기하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내야 하는 기업들의 처지가 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