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국민 稅부담 나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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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깎을 예산이 없습니다."
새해 예산안 1백11조7천억원에 대한 국회의 본격 심의를 앞둔 20일.한나라당 이상배 정책위의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세금을 줄이긴 줄여야 하는데 공적자금도 갚아나가야 하고…."
말끝을 흐리는 이 의장에게서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전의(戰意)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예산국회에 임하는 한나라당의 태도가 예년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특히 내년에는 국민 1인당 세금부담이 사상 처음 3백만원을 넘어서고 조세부담률이 22.6%로 치솟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의 반응이다.
한나라당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1차 협상카드로 '최소 5조원 삭감'안을 꺼내들었다.
2년 전에는 이한구 의원이 '예산안 10%(10조원)삭감'을 주장하다 당내에서 '왕따'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해마다 예산심의때면 예결위원들의 나눠먹기식 밀실야합이 이뤄졌지만 적어도 서민들의 주머니사정을 헤아리려는 흉내라도 내는 척은 했다.
그러나 내년 예산안의 경우 한나라당이 "삭감규모도 정하지 못했다"고 자인할 정도로 철저히 관심밖으로 내팽겨쳐진 모습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2백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핑계로 삼고 있다.
공적자금 상환을 위해 내년부터 2조∼3조원이 고정비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예산삭감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선 때문에 예년에 비해 1개월 가량 단축된 국회일정도 예산안을 세심하게 살펴보기 힘들게 만든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사정이 어떠하든 졸속 예산처리의 1차적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집권 가능성이 가장 높아 자신들이 꾸려갈지도 모를 살림살이 규모를 줄일 이유가 전혀 없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일부세력과 자민련 등 제 정파는 공동신당 창당일을 예산심의 마감(11월6일)을 하루 앞둔 내달 5일께로 잡았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보니 예산심의 일정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한 듯 하다.
게다가 오늘도 대선 후보들은 선심성 공약을 내놓으며 돈 쓸 궁리만 하고 있다.
김병일 정치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