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대 박사과정 모집 결과 18개 모집단위중 절반이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특히 올해 박사과정 전체 경쟁률은 지난해 전기모집 경쟁률 0.90대 1보다 떨어진 0.85대 1을 기록했다. 인문대 박사과정은 전체 15개 학과중 언어학과와 종교학과를 제외한 13개 학과가 정원을 못채웠고 일부학과에는 지원자가 하나도 없었다.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 박사과정까지 '찬밥' 대우를 받는 것은 박사학위를 받아도 실업자 신세를 면키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점점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남진 인문대 부학장은 "인문대 출신 박사중 3백여명 정도가 고정적인 직업이 없어 시간강사 자리를 전전하고 있다"며 "이제는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상담을 해 오는 학생에게 '한번 더 생각해 봐라''취직을 하는게 낫지 않겠느냐'며 말리는 형편"이라고 씁쓸해 했다. 올해 자연대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서동석씨는 "어렵게 공부해도 취직하기 어려운데 누가 대학원에 들어오려고 하겠느냐"며 "이공계 대학을 다니는 학생의 상당수가 변리사 시험이나 사법고시, 공인회계사 (CPA)같은 자격증 시험준비에 매달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국제화 세계화 바람을 타고 국내 대학 박사 출신을 경시하는 분위기도 박사과정 지원율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박성현 자연대 학장은 "국내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공부하는데 뜻을 둔 학생들도 박사 학위는 미국등 선진국에서 따오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에 돌아와 교수로 임용되고자 할 때 명함이라도 내놓으려면 국내 박사보다 외국 박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2000년 말 기준 서울대 전체 교수 1천4백38명중 최종 학위를 국내에서 받은 '국내파'는 5백53명으로 전체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 의.치대를 제외하면 국내파 교수는 2백20명에 불과하다. 한때 '취업보증수표'로 여겨졌던 서울대 공대 박사과정도 인기가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이승종 공대 부학장은 이와 관련, "사회 전반에 걸친 이공계 기피 현상과 최근 정부가 내놓은 해외 유학생 지원책이 맞물려 빚어진 결과"라고 풀이했다. 그는 "정부가 매년 이공계 유학생 3백명을 뽑아 연간 3만∼5만달러까지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최근 발표하면서 국내대학원이 우수한 학생을 모집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꼬집었다. 이밖에 소수 정예의 우수 인력만 길러내야 할 대학원 정원이 너무 많아 시장수요보다 많은 박사를 공급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최근 연이은 미달사태로 서울대가 지향해온 '대학원.연구중심 대학 육성'이라는 목표가 무색해졌다"며 "본부 차원에서 중.단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