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네바 합의 파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발언은 북한의 핵개발 파문에 따른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김 상임위원장은 21일 평양에서 정세현(丁世鉉) 장관급회담 남측 수석대표를 만나 "우리도 최근 사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철회할 용의가 있다면 대화를 통해 안보상의 우려 사항을 해소할 준비가 돼있다"고밝혔다. 그의 발언은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시종일관 강조하는 남측 입장에비춰볼 때 기존 주장을 또다시 표명한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대결보다 대화와 협상을 강조한 북측의 첫 공식입장이라는 점에서 평가된다. 기존의 입장을 재강조하면서도 대화의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북미관계의 기존 틀을 깨지는 않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더욱이 평양방송이 이날 미국의 성실한 제네바 기본합의 이행을 촉구한 것과도같은 맥락인 것으로 보인다. 평양방송의 합의이행 촉구는 제네바 합의 8주년을 맞아 보인 통상적인 반응으로이해되지만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제네바 합의에 대한 북측 관영매체의 첫 언급이라는 점에서는 주목된다. 이 방송은 "미국은 합의문이 채택된 지 8년이 되는 오늘 아직까지 출발선에서맴돌고 있다"면서 "지금 기본합의문은 그 핵심 사항인 경수로 제공이 대폭 늦어짐으로써 파기되느냐 마느냐 하는 심각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경수로 지연과 이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 문제는 그동안 북한이 여러 경로를 통해 제기해온 주장이라는 점에서 원론적인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평양방송은 제임스 켈리 특사의 방문과 관련, "미국은 오만하게도 저들이 해야할 일은 하지 않고 우리에게 압박을 가하며 저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강박하는행위를 하고 있다"면서 불쾌감을 표시해 지난 7일 외무성 대변인의 회견내용을 반복했다. 북한이 이처럼 원론적 입장을 평양방송을 통해 이번에 재차 내보낸 것은 그동안자기들이 미국보다 제네바 합의를 존중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켈리 특사의 방북 때 핵개발 계획을 시인하고 미국의 '안보우려사항'과 북측의 요구사항을 맞바꾸는 협상안을 제시해 놓은 만큼 공은 미국측에 넘어갔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북한은 26일 멕시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3국정상회담의 결과를 본 후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북측으로서는 서둘러 대응방안을 발표해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미국을 비롯해 주변국의 움직임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인것 같다"며 "한미일 3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방침이 어느 정도 정해져야 여기에 대응하는 입장으로 공식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측이 아직까지 원론적 입장만 재강조함으로써 선(先) 핵 프로그램 포기, 후(後) 협상을 내세우며 압박전술을 구사하는 미국측과는 다소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배제할 수 없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심규석기자 = 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