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에는 어떤 사업을 해야 강한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당장 내년도 경영환경이 불확실한데 어떻게 내실을 다져나가야 하나...' 삼성 LG SK 현대.기아자동차 등 주요 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의 한결 같은 고민이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앞둔 지금 구조조정본부장들의 고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순간순간의 최종 경영 판단자료를 모아 총수에게 보고해야 하는 이들에겐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경영환경이나 전망에 대한 잘못된 판단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2인자'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다. 이들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뼈를 깎는 아픔으로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일궈낸 '명장'들이다. 이제 10년 후를 내다보는 '포스트 구조조정' 방안에 골몰하고 있는 이들에게 실수란 용납되지 않는다.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대담하면서도 치밀하고 섬세한 면모를 갖춘 전문경영인이란 평가를 받는다. 공채 12기로 제일모직에 입사했다. 당시는 본사근무를 선호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일선 현장인 공장근무를 자원했다. 공장에서 야간 당직을 혼자 도맡아 할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는 것이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의 얘기다. 그는 특히 각종 재무와 회계 관련 서적들을 섭렵하면서 소모방업계의 원가계산 모델을 개발해 당시까지만 해도 주먹구구식이었던 원가체계를 대폭 개선시키기도 했다. 이 본부장을 처음 대할 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조금만 대화를 나누다보면 격의없는 분위기를 이끌어내 '탤런트'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본부장은 이건희 회장을 보필해 '세계속의 삼성'을 뿌리내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내년도 경영계획과 관련해선 이미 총인건비를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고 비용을 10% 줄이라는 지침을 내려놓은 상태다. 점진적으로는 이재용 상무보를 중심으로 한 후계체제가 순탄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가야 하는 것도 과제다. 강유식 LG 구조조정본부장은 '지주회사 체제' 전환작업을 마무리짓느라 여념이 없다. 내년 상반기중엔 통합지주회사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한편으로는 '일등 LG'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방안을 짜내는 일에도 매달리고 있다. 훤칠한 키의 강 본부장은 '부드러운 원칙주의자'다. 경영철학도 '원칙에 충실한 정도경영'과 '성과주의'로 요약된다. "성과주의의 실현이야말로 창의력을 가진 인재들이 스스로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열망과 기상이 없이는 1등도 최고도 실현할 수 없다"고 늘 강조한다. 그만큼 일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 어려움이 생기면 원인을 찾아 정면으로 부딪쳐 풀고 넘어가는 스타일이다. 87년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LG전자에서 전략기획부문을 맡아 전자.통신부문 사업구조의 새 틀을 짰고 LG반도체 사업의 산파역할을 수행했다. 97년 LG회장실로 자리를 옮겨 LG의 구조조정 실무를 진두지휘한 '전략기획통'이기도 하다. 김창근 SK 구조조정본부장은 '마징가'로 불린다. 하루 3~4시간을 자고도 거의 철인과 같은 체력과 정신력으로 엄청난 양의 일을 처리해 낸다는 점에서 붙은 별명이다. 새벽에 이메일을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 바쁜 일정이지만 매일 저녁 집 근처에서 조깅을 한다. 주말에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골프 등으로 건강관리를 한다. "자기 자신에게는 엄하게,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럽고 여유롭게"라는 말에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묻어난다. 일기를 쓰면서 자신과 대화를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단다. 김 본부장은 안정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성장을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내년에는 투자도 기업 경영에 무리가 없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한 확대할 방침이다. 장기적으로는 그룹의 주력 사업부문을 정보통신과 에너지.화학 생명과학 등으로 재편한다는 구상이다. 현대.기아자동차는 구조본 조직을 두고 있지 않지만 기획총괄본부가 그 기능을 맡고 있다. 정순원 기획총괄본부장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경복고 직계 후배로 지난 99년부터 현대차에서 기획업무를 맡고 있다.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13년여동안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재직해오다 제조업체로 자리를 옮긴 케이스. 대단히 복잡한 국내외 여건과 경제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자동차회사의 기획업무를 무난하게 처리해 오고 있다는게 지배적인 평이다. 합리적이고 온화한 대인관계를 갖고 있다. 재정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건설교통부 산업자원부 등을 상대로 한 대(對)정부 업무도 맡고 있어 관계에도 발이 넓다. 최근 정몽준 의원의 대선출마와 관련, 현대차가 '정경 분리'를 선언할 때 성명서를 직접 읽기도 했다. IMF 관리체제가 끝나면서 구조조정본부라는 명칭은 이제 어색해졌지만 아직 이름을 바꿀 계획은 없다는게 구조본부장들의 이야기다. 다만 LG는 내년에 통합지주회사가 발족하면 구조본 조직도 자연스럽게 지주회사로 편입할 예정이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 ----------------------------------------------------------------- < 이학수 삼성 본부장 > 1946년 경남 밀양생 부산상고, 고려대 상대 졸업 71년 제일모직 입사 87년 삼성 회장비서실 상무 92년 삼성 회장비서실 부사장 94년 삼성화재 부사장 95년 삼성화재 사장 96년 비서실장 98년 삼성 기업구조조정본부장 < 강유식 LG 본부장 > 1948년 충북 청주생 청주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72년 LG화학 입사 87년 LG전자 이사 92년 LG반도체 상무 97년 LG회장실 부사장 98년 LG구조조정본부 부사장 99년 LG구조조정본부 사장 2002년 LG구조조정본부 부회장 < 김창근 SK 본부장 > 1950년 서울생 용산고,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74년 SK케미칼 입사 94년 그룹 경영기획실 이사대우 2000년 SK구조조정추진본부장 겸 SK(주) 재무지원부문장 2002년 SK구조조정추진본부장 겸 SK(주) 대표이사 사장 < 정순원 현대.기아차 본부장 > 1952년 경남 진주생 경복고,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86년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99년 현대.기아자동차 기획조정실장 2001년 3월 현대모비스 부품사업총괄 부사장 2001년 8월 현대.기아자동차 기획총괄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