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lee@univera.com 올해는 유난히 출장이 잦았다. 1년의 절반 정도를 미국 중국 러시아 멕시코에 있는 해외법인으로 돌아다니려니 노트북 컴퓨터는 어느새 출장길의 필수품이 돼버렸다. 스팸메일을 제외하고도 하루 평균 70∼80통의 e메일을 받게 되니 하루라도 e메일 체크를 거르면 곤란해질 판이다. 그런데도 솔직히 말해 난 아직도 e메일을 주고받는 일이 영 달갑지 않다. 우선 e메일은 그 형상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각의 전자 모니터에 똑같은 필체로 떠오르는 e메일을 대하노라면 사람의 감정마저 규격화되고 박제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을 만나면 서로의 눈빛을 보며 이야기하고,손으로 써 내려간 편지를 대할 때는 그 필체와 행간을 통해 사람의 진심을 읽게 되는데,e메일로는 도무지 그런 정감어린 교류가 이뤄지지 않는다. 누구든 편지 한 통을 쓰기 위해 애를 태우며 밤을 지새운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한 줄 썼다가 지우고,한장 겨우 채웠다가는 다시 손으로 북북 찢어버리면서 한 획 한 획 마음을 깃들인 편지는 따뜻하고 정겹다. 미국 유학시절,부모님이나 친구들과 참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어느날 아버지는 신문기사를 동봉한 편지 한 장을 보내셨다. 세계의 지성들이 인류의 미래에 대해 논의한 로마클럽에 관한 기사였다. 아버지는 아들이 긴 안목에서 세상을 위해 뭔가 큰 꿈을 키워나가길 바라신 모양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내게 격려와 위안의 편지를 보내주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영안실을 지키며 나는 아버지께 마지막 편지를 썼다. 최선을 다했으나 아버지를 끝내 죽음에서 구해내지 못한 못난 아들을 용서해 달라고,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아버지를 뵈옵는 날에는 더 당당하고 자랑스런 아들이 되어 있겠노라고 쓴 그 편지를,나는 아버지의 관에 넣어 드렸다. 아버지는 분명 그 편지를 읽어보셨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e메일로는 눈물 젖은 편지를 쓸 수도 없고,저 세상으로 간 이에게 부칠 수도 없다. 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e메일이 제아무리 편리하고 신속하다 해도 손때 묻은 편지지에 소박하게 써 내려간 편지가 나는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