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의 변화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월,주요 생활물품의 가격과 임금을 대폭 인상하면서 북한식 경제운용의 근간이 돼 온 배급제를 상당 부분 폐지했으며,최근에는 신의주특구를 설치하고,그 지역 안에는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를 운용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북한의 전략과 전술에 속아 와서인지 북한의 변화를 발표된 그대로 믿으려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북한의 최근 변화에 대한 토론회에서 어김없이 거론되는 것은 '북한의 전략에는 변화가 없으며 북한이 발표해 온 변화는 단지 전술적 변화일 뿐 북한은 결코 시장경제체제로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논할 필요는 없다. 전략과 전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북한의 경제적 변화가 전략적 변화 또는 전술적 변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북한이 핵개발을 시도한 것이 김정일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음과 마찬가지로 북한이 만일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다면 그것도 김정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최근 변화를 김정일 체제 유지를 위한 전술적 변화라고 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현재의 체제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김정일로 하여금 배급제를 폐지하고 경제특구를 설치하자는 결정을 내리게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북한경제제도의 근간이었던 배급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은 벌써 수년 된 일이다. 주민들이 그들의 식생활을 비공식적 장터를 통해 상당부분 해결해 오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비공식적 거래가 오히려 공식적 배급제의 역할을 능가할 경우 김정일 체제의 영향력은 그만큼 축소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물가와 임금을 인상하고 배급제를 폐지함으로써 비공식적 거래를 공식화해 현 체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것이 바로 최근의 변화 의도라고 판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최근의 변화는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일단 시작된 이상 다시 되돌리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비록 초보적인 시장제도를 도입했다고는 하나 일단 주민들이 개인의 이익을 시장을 통해 만족시켜 나가기 시작하면 정부가 다시 배급제로 환원시키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뿐더러 더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물론 지금의 초보적 시장제도 도입으로 북한의 경제난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다른 경제적 어려움이 나타나거나,지금의 어려움이 확대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어려움이 새로이 등장할 때 북한정권은 점차 시장경제적 요소를 확대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북한경제체제의 시장제도로의 이행기는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북한경제체제의 이행이 안정적으로 성공을 거두리라는 보장은 없다. 중국은 자원이 풍부하고 또 농업이 위주가 되는 산업구조를 지니고 있었으므로 경제체제의 이행과정에서 외부와의 접촉이 크게 요구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북한은 외부의 지원이 필수적인 환경을 지니고 있어 경제체제 이행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개혁과 개방의 속도를 중국보다 빠르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 일본,그리고 남한과의 관계를 개선해보려는 노력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대외적인 지원을 획득하는 데 실패할 경우 북한의 변화는 오히려 더 큰 곤경에 빠질 수도 있다. 이 경우 북한 내부 권력구조의 불안정은 물론 한반도 안보상에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대응은 자명해 진다. 북한의 최근 변화가 전략적이든 전술적이든 우리는 철저한 안보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지녀야 한다. 북한의 경제체제 이행이 결코 한반도의 안보를 담보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북한의 체제이행은 그것이 전술적 변화라 할지라도 이를 외부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금 다른 대안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또 체제이행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할지라도 북한이 그 길을 가는 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통일비용을 줄여 줄 것이기 때문이다. yslee@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