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은행산업의 선진화는 멀었다. 모든 은행들의 업무가 다 똑같다.' 최근 한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한국 은행들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은행간에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영업방식에서는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요즘 국내 은행들의 행태는 기러기떼를 연상케 할 만큼 획일적이다. 은행들은 IMF(국제통화기금) 체제 이후 기업 대출을 기피하고 일제히 가계대출 시장에 뛰어들어 과당 경쟁을 벌였다. 이에 따라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대출은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무분별한 카드영업 확장은 연체율 증가로 이어져 결국 부메랑처럼 은행경영에 위협요소로 등장했다. 국내 은행들의 기러기떼 행태는 거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PB(프라이빗 뱅킹) 시장에서도 드러난다. 돈이 된다고 하니 자산 2백조원의 대형 은행부터 50조원의 은행까지 너 나 가리지 않고 모두 가세,부자고객 확보경쟁을 벌이고 있다. 막대한 임대료를 불사하고 서울 강남 요지에 PB 점포를 개설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은행간 '돈싸움'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시장도 마찬가지다. 국내 시중은행 중 올해 경영전략에서 '중소기업 대출'을 중점공략 시장으로 꼽지 않은 곳이 없다. 한국금융연구원은 "국내 대출시장이 수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상태에서 은행들이 예대업무를 유지하기 위해 수익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고 있다"며 "이같은 과당경쟁은 은행 건전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향후 한국의 은행은 2∼3개 대형은행과 4∼5개 특화은행으로 양분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전망이다. 하지만 특화된 서비스나 시장 개발은 뒷전으로 한 채 모든 은행이 한 시장에 몰려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에 나서고 있는 최근의 상황은 이런 전망조차도 무색케 한다. 시장을 주도하는 선도 기러기를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은 둥지를 틀 수 있는 특화된 영역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앞서가는 기러기를 뒤쫓기에만 급급해 한다면 불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에 다름 아니다. 유병연 경제부 금융팀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