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 우리 국민들은 '소방수'로 출동한 바 있다. 대기업이나 금융회사의 부실을 공적자금 투입으로 막은 것도 그렇고,내수소비를 확대하고 주택경기를 살려놓은 것도 국민들이 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 소비자인 국민들은 더 이상 우리 경제를 책임지기 어렵게 돼 있다. 그동안 소비촉진 드라이브에 참여,주머니돈이 거의 바닥났고,카드소비도 수백만명이 신용불량자로 내몰려 더 이상 확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한동안 봇물처럼 터지던 주택담보대출도 끊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가계 신용불량과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졌다. 이제 가계는 대출한 돈이 저축한 돈을 추월하는 적자구조로 전락했고,가구당 평균 대출금이 1년 소득의 80%를 넘어서는 취약한 재무구조로 악화되고 말았다. 마치 외환위기 때 우리 기업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형국이다. 가계가 다시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는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업에 이어 개인에게 워크아웃제도가 적용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최근 수년 우리 기업들은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재무구조가 개선되어 부채비율이 국제기준을 초과할 정도의 우량한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을 정도다. 부채비율과 함께 우리 기업들의 고질적인 문제가 됐던 낮은 자본수익률도 호전되어 외환위기 직전에는 거의 0%에 가깝던 자기자본이익률(ROE)도 금리수준을 넘어서는 개선을 보이고 있다. 1인당 수익성이나 1인당 생산성도 호전돼 구조조정의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들은 아직 살아있는 기업이라고 할 수 없다. 투자를 늘리지 않으니 말이다. 최근 전경련의 조사를 보면,2백대 기업 중 35%가 내년 하반기 이후에 투자를 늘리겠다고 응답했고,투자회복 자체를 불투명하게 보는 응답도 21%를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너도 나도 현금을 보유하려는 성향이 높아져 역시 전경련 조사에서 5백대 기업 중 46%가 '투자보다 현금을 보유하겠다'고 응답했다. 이제는 소비자를 대신해 기업들이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하고,그 방법은 투자를 늘리는 일이다. 또 정부는 기업들이 투자에 자발적으로 나서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그동안 내부 경영구조 개편하는 일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사업구조 개편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 길은 바로 투자다. 아직도 매출액의 50%가 재료비인 현실에서 불과 1.5%의 기술개발 투자로 선진국을 만든다는 것은 난센스다. 바로 이럴 때 기술개발 투자를 늘려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수종(樹種·새 사업)을 찾아야 한다. 이제까지의 구조조정이 목숨을 부지한 것이라면,앞으로는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신기술 신제품을 위한 투자가 이어져야 한다. 당연히 사람에게 투자하고,지식과 서비스에 투자하고,시스템에 투자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제까지의 경영혁신 노력들이 시너지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만일 이제부터 기업들의 투자가 살아나면 우리 주가는 멀지 않아 1,000포인트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정부는 이를 위해 공급자정책을 펼쳐야 한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법인세율인하 문제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투자촉진을 위한 고속상각도 검토할 시점이다. 또 기업의 부동산취득이나 신·증축 허가문제도 유연한 정책을 펼칠 때다. 다만 지금이 세계적 공급과잉 국면임을 감안하면,과당 경쟁을 불러올 중복투자나 단순한 신·증설은 피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4∼5년간 체력을 보강한 경제주력부대인 기업을 갖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우려는 이들 기업의 투자활동 여하에 따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정책의 타이밍이다. 정권교체기라는 이유로 기업투자 촉진책을 늦추지 말고 지금 착수해야 한다. 경제관료의 소신과 식견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리고 금융회사들도 다시 기업 대출에 적극성을 보일 시점이다. kceum@kyonggi.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