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27일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의 지시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일본 도쿄에서 주일특파원들과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전자 주가 조작을 위해 종잣돈으로 동원된 현대중공업의 돈 1천8백억원은 오너이자 최고책임자였던 정 고문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전 회장은 정 고문의 주가조작 지시의혹을 공개한 것과 관련,"솔직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 고문도 검증을 받아야 된다는 뜻에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식 매입과정에서 중공업측과 종합기획실이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현대증권은 단지 창구역할만 맡았다"고 주장했다. 이 전 회장은 자신이 주가조작 혐의를 시인한 것에 대해 "구속되던 날 아침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부름을 받고 청운동 자택을 방문했는데 이 때 명예회장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몽준이가 다치지 않게 도와달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명예회장 밑에서 일한지 30년이 넘었지만 그렇게 손을 꼭 잡아주신 것은 그 때가 처음"이라고 소개한뒤 "명예회장이 돌아가시고 나면 나 스스로도 현대와의 인연이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현대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내용을 공개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현대상선에 대출된 4천억원의 대북 송금의혹에 대해서는 "대출이 이뤄질 당시 야인이어서 잘 모르겠다"고 답한 후 "금강산 관광사업 차질로 회사가 굉장히 어려웠으며 자금난을 덜기 위한 금융지원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9일 거주지인 미국으로 돌아간 뒤 대통령 선거 이전에 한국에 들어가 좀 더 자세한 자료를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지난 98년 5~11월까지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 자금 2천1백34억원으로 시세를 조종,현대전자 주가를 주당 1만4천8백원에서 최고 3만4천원까지 끌어올린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에대해 정몽준 의원은 이날 대구에서 "사실이 아니며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발언"이라고 일축했다. 정 의원은 이어 "선거 때 네거티브 캠페인을 하지 말라고 언론에서 그러는데,한나라당에 그러지 말라고 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날 저녁 대구·안동·포항 MBC 공동주최 TV토론회에서도 "3년전 이회창 총재는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의 배후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현대그룹 정몽구 회장,그리고 나를 지목했다"고 말했다. 강신옥 창당기획단장은 "이 전 회장이 이회창 후보 동생과 고등학교 동창으로,한나라당이 시킨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배후설을 제기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정종호 기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