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을 위한 길이기도 하고,건강유지에도 도움이 되니,'일석이조'라니까"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요즘 버섯 키우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일주일중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충남 성환의 연암축산원예대학에 머물면서 버섯 생각에 묻혀 산다. 구 명예회장은 대학 캠퍼스 근처의 농장 내 숙소에서 아침 8시쯤 일어나 오전 내내 버섯농장에서 일한다. 점심 때가 되면 이 대학 학장이나 교수들과 식사를 하며 버섯 품종개량 등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오후에도 손님을 맞지 않으면 농장 내 식품연구소에서 버섯 연구에 몰두한다. 버섯은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간 구 명예회장에겐 삶의 화두가 돼버린지 오래다. "은퇴하고서 보니까 버섯 종균을 일본에서 가져오더군요.세관에서 뚜껑을 열면 오염된 경우가 많아 (농민들의)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그래서 버섯 종균을 만들기 시작했죠.발효분야 박사와 둘이서 한참을 연구한 끝에 재작년 2월에야 성공했습니다" 구 명예회장이 버섯에 관심을 갖고 종균 개발에 나선 것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95년부터. 70세 되던 해다. 그는 "한국에 버섯 농장은 여럿 있어도 종균하는 곳은 없다"라는 말을 듣고 버섯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단다. 구 명예회장이 처음에 연구한 것은 팽이버섯이었으나 지금은 만가닥버섯,새송이버섯 등으로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버섯 장조림" 등 버섯을 이용한 식품으로도 관심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난 98년에는 환경에 예민한 버섯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 버섯 연구시설도 현대화하는 등 밤낮으로 정성을 기울였다. "버섯 종균을 만드는데 일본은 65일 걸리지만 우리는 35일도 채 안걸립니다.우리 농민들이 수입해왔던 일본보다 한 단계 앞선 거지요.곰팡이도 없고 오염이 안된 종균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구 명예회장은 버섯 관련 신기술이나 새로운 동향에 관한 정보라면 놓치지 않는다. 교수나 손님들이 건네주는 버섯 관련 서적을 읽는 데도 시간을 아끼지 않고 있다. 연암축산원예대학의 교수들과는 요즘도 밤 늦게까지 품종개발에 대한 토론을 벌이곤 한다. 주변에선 "컨센서스의 신봉자인 구 명예회장의 버섯 연구 스타일 역시 컨센서스"라고 설명한다. 경영인 시절 그는 한 사람의 탁월한 생각보다 열 사람의 모아진 지혜를 훨씬 가치 있게 평가하곤 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50년 락희화학(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한 이후 한평생을 기업경영이란 외길을 걸어온 구 명예회장. 이제 그는 "은퇴한 경영인"이나 "재계 원로"라기 보다는 자연을 즐기고 가꾸며 살아가는 "자연인 구자경"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