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정치를 '소용돌이 정치(The politics of vortex)'라고 규정했다. 사회의 모든 구성요소와 단위들이 중앙권력을 향해 끌려들어가는 소용돌이 구조가 한국정치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대중사회,고도의 동질성,중앙집권화의 전통,소용돌이라는 요소로 한국정치의 핵심을 설명한 그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모든 것이 최고중앙권력을 얻거나,그 곳에 이르는 데 달려있기 때문에 정당이란 지향하는 이념이나 정강이 아무리 고상하더라도 권력획득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고,따라서 목적을 위해선 언제라도 얼마든지 뒤집고 바꿀 수 있다. '철새 정치인'으로 지탄 받는 정치인들을 이끄는 것은 이른바 '정치적 목적론'이다. '정당이란 정치권력 획득을 위한 수단'이라는 정치학 헌법학교과서적 설명이 교묘하게 동원된다. 사실이다. 한국의 역사가 증명해 주지 않는가. 장관들 교체빈도 못지않게 한국정당들이 걸어온 이합집산의 양상만큼 외국학생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없다. 우리 정당들은 그 나이가 얼마나 젊은가. 그러나 정치인들의 철새현상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정이기도 하다. 소위 누가 대권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에 소속정당에 연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선택은 이념적으로 잘 안맞는 비교적 진보적 정치인들을 일인 보스가 이끄는 보수정당에 그대로 남도록 만드는 이유가 된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낙선할 것이라는 체험적 경륜과,이념적으로 동질적인 정치인들과 맺게 될 정서적 불편함이 그토록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겪은 동지와의 이념을 위한 재회를 막는다. 현실적으로 통합을 가능케 하는 것은 '정치이념'이 아니라 '당선 가능성'이다. 이 당선 가능성이란 적중력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민간기구들의 여론조사를 통해 종합되는 가정적인 통계수치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또는 일정한 시점에 투표한다면 누구를 찍겠는가'정도의 가정적 질문들이 그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독일 총선을 예로 들자면,선거전 시종일관 야당에 대한 지지율을 한참 밑돌던 집권 사민-녹색당 연합이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는데,물론 홍수와 이라크전쟁 문제라는 호재가 작용한 운은 있었을지라도,유권자들의 선택이 가변적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야당에 10% 이상 뒤지고 있을 때에도 독일에서는 '슈뢰더 총리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나오지 않았다. 1백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정당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월드컵 때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붉은 악마'들의 저력은,3·1운동 4·19의거에 대한 그레고리 헨더슨의 설명을 참조하자면 1980년의 광주항쟁,1986년의 6·10항쟁과 더불어 한국정치의 대중사회성이라는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운동은 한국사회가 기층과 정치적 중심 사이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사로잡혀 있을 때,참고 참다 마지막 최후수단으로 일어난 저항권의 행사였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붉은 악마의 경우,저항보다는 억눌린 욕구와 불만스런 현실을 바꿔보려는 미래지향적 의지가 더 특징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정치인들은 이들 붉은 악마들이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지,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운동장으로 쇄도했던 이들이 어떤 욕구와 선호를 가지고 있는 지 분석하는 데 몰두했을 것이다. 특히 당장 여론조사에 영향을 미치는 '이미지의 정치'에도 관심을 집중했을 것이다. 사실 월드컵 때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기성 정당의 구태의연에 싫증이 난 나머지 이미지의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당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이념적 목표와 정체성이 분명한 소수정당들이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설사 정권획득에 실패하더라도 자기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부화뇌동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꾸려가는 야당의 출현,그리고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지 않는 정당들의 현존이야말로 30여년 전 헨더슨이 처방한 '다원주의'를 가능케 하는 전제조건인 것이다. 붉은 악마들의 선택이 3·1운동 4·19의거 동렬에서 한국대중이 행사한 역사적 지혜의 사례로 기록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