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친 지난 27일 오후 4시. 서울 구로동 애경백화점 정문 앞엔 휴일 쇼핑객들이 여러 갈래로 줄을 지어 있었다. 백화점측이 이날까지 10만원 이상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벌인 "1백% 당첨 경품 행사"에 참여하는 인파였다. 이 시각 자동차로 7~8분 거리에 있는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유명 미용실 이용권에 당첨된 주부 김영임(가명.35)씨는 "날씨가 춥더라도 공짜를 외면할 순 없지 않느냐"면서 "상품권을 경품으로 준다는 목동 백화점으로 간다"며 자리를 떴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현대백화점 목동점,애경백화점 구로점을 핵(核)으로 하는 서울 서남상권 "트라이앵글"에서 고객 쟁탈전이 한창이다. 지난 8월말 현대백화점이 영업면적 1만2천평 규모의 목동점을 연 후 트라이앵글 상권에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갖가지 판촉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들은 총성만 없지 전쟁이나 다름없다고 혀를 내두른다. 신세계 영등포점 최은용 판촉팀장은 "전국적으로 시장 쟁탈전이 가장 치열한 곳"이라고 말한다. 벌써 두달째 '피말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유통업체들과 달리 지역 주민들은 전에 없이 행복한 시절을 맞았다. 쇼핑 장소 선택 폭이 넓어진 데다 경품행사 할인행사(백화점카드 고객 대상) 등 유통업체들이 제공하는 혜택도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 사이에 '쇼핑천국'이란 말까지 나돌 정도다. ◆백화점.할인점 시장쟁탈전 현대 목동점 오픈 직후 트라이앵글 상권에 있는 5개 백화점과 3개 할인점에는 '고객 이탈을 막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상권내에서 가장 구매력 있는 양천구민들이 현대 목동점으로 쏠리지 않도록 하라는 것. 이런 분위기는 고객 이탈을 막으려는 롯데 영등포점 등 기존 매장들과 신규 고객을 확보하려는 현대 목동점이 8월 말부터 시작한 대대적인 물량 공세로 이어졌다. 트라이앵글 상권내 9개 대형 유통매장이 8월 중순 이후 두달 남짓 펼친 세일,판촉행사,사은행사는 모두 70여회. 신문에 끼워 보낸 전단 발행건수가 1백회가 넘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총 1천5백만부가 넘는 전단이 양천·구로·강서·영등포구 등 핵심 상권에 거의 매일 뿌려진 셈이다. 상권 쟁탈전이 격화되면서 그동안 상권내 경쟁매장들끼리 공존공생하기 위해 은밀히 이뤄지던 월별 영업실적 교환도 지난달부터 완전 중단됐다. A백화점 관계자는 "같은날 사은행사를 벌일 경우 경쟁 점포에 나온 경품이 우리 행사에만 빠지면 바로 책임을 물을 정도"라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옛날처럼 매출 실적을 있는 그대로 주고 받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살거리 볼거리 많은 쇼핑천국 서남상권 트라이앵글은 소비자들에겐 쇼핑과 엔터테인먼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쇼핑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 현대 목동점이 있다. 지역내 최고급 백화점을 표방하며 개점한 현대 목동점은 지하 2층 영시티에 멀티플렉스 서점 푸드코트 등 놀거리 먹거리 살거리를 대거 입점시켜 젊은이들을 유인하고 있다. 목동중 2학년 한선주양(15)은 "전에는 영화 보러 명동이나 이대앞으로 나갔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애경 구로점도 대대적인 리뉴얼을 통해 올 초 극장 서점 캐릭터매장 등을 입점시켰고 이후 젊은 고객이 몰리고 있다. 애경은 층별로 이들 시설과 백화점 매장을 연결,현대 목동점 개점 이후에도 큰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백화점마다 식품부문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주부들에겐 희소식이다. 행복한세상백화점은 불과 1백m 떨어진 곳에 들어선 현대 목동점에 대응,지하에 농산물 할인점 농협하나로클럽을 입점시켜 식품부문을 강화했다. 롯데와 신세계 영등포점도 최근 식품매장 구성을 업그레이드했고 애경은 이에 앞서 올 초 지하에 LG수퍼마켓을 입점시켰다. 하나로클럽에서 만난 주부 박계자씨(48·목동 4단지)는 "경쟁이 심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쇼핑 환경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