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제조업 경쟁력을 위해.. 裵洵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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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만난 제조업의 사장님은 맛있는 점심을 살 테니 지방에 있는 자기네 공장을 보아달란다.
연간 1천5백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현재는 빚이 많아 약간의 적자를 내고 있으나,내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니 수출만 좀 늘리면 손익은 개선되리라고 생각하는 데,문제는 제품 품질이 아직 세계 수준에 못미치고,원가 절감이 계획에 못미치고 있단다.
품질과 원가를 경쟁회사 수준으로 개선하는 문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시장에서 한번 잃어버린 경쟁력은 품질과 원가 개선만으로는 회복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이 세계적인 품질이나,중국과 동등한 원가에 있던 시대는 지났다.
그런데도 우리 중견 제조업들은 지식경영을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얼마 전 KAIST 주최 세미나에서 영국 서섹스대학의 파빗 교수는 대규모 생산업체들이 신경제에서 지식경영 발전으로 겪는 변화에 대한 설명을 했다.
대기업들은 문어발식 경영에서 탈피,특정 전문분야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집적하는 능력이 경쟁의 기준이 되고 있고,대규모 생산을 중심으로 시장에서 독과점적 위치를 차지하던 대기업들은 과거 수직 결합을 통한 원가 우위를 이제는 기술 융합을 통해 지식의 수직 해체를 가속화해 유연성을 갖추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론을 앞에서 거론한 중견제조업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는 원고지 10장 길이의 본 칼럼에서 다룰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일본기업들이 흔히 하는 TQC나 TPM 수준보다 한 차원 위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때 '바늘에서 원자력발전소까지 만든다'는 문어발 재벌들은 이제 그 발들을 다 잘라 전문업체에 이관하고,이 전문업체들을 연결하고 묶는 역할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변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제철기업은,제철 노하우가 이미 기계 속에 코드로 내재돼 기계가 알아서 생산하고 있으며,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사태에서 의사 결정만 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선진 대기업들은 전문업체들을 연결하고 취합해 종합적인 해결책을 고객에게 제시하는 사업을 할 것이고,대규모 생산 공정은 기계에 의존하고,기계가 할 수 없는 창의적인 의사 결정만을 사람이 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도 극도로 전문화된 작업만 하고,세계의 대기업과 연계돼 시장을 확보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모두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정보통신 강국인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어느 나라 보다 빨리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좌절감을 느끼는 이유는,IMF 사태로 고통받던 5년 동안 우리는 구조조정을 말로만 했지 경쟁력은 저하됐기 때문이다.
경기가 약간 회복돼 경제가 성장한다고 하여 마치 경쟁력이 향상된 것 같이 착각하고 있었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업종 일부를 해외에 매각한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불량채권 문제를 우리는 거뜬히 해결하고 유동성 위기를 벗어났으며,내수 소비 증가로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은행은 합병 거론 때 마다 부실가능 채권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고,물가가 한자리 숫자로 유지되는 기간에 원화 가치는 50% 이상 평가절하됐다.
노사 관계는 주5일 근무제가 거론되면서 이제는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게 됐다.
유독 정보고속도로만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그것도 민간자본에 의해 확충됐다.
기업은 시설 투자를 대폭 '절감'하면서 동시에 연구개발도 줄여 버렸으니 급격한 환경변화에 어떤 대응을 하고 있는가는 불문가지이다.
우리 제조업들은 경쟁력을 위해서 다시 한번 근본적인 변화를 해야 한다.
우선 기업가들이 큰 맘 먹고 사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경쟁력이 살아난다.
우리나라에서 최대의 이익을 내는 삼성전자도 사업구조 개혁이 눈에 띄지 않는 생활가전부문에서는 적자를 보고 있다.
soonhoonbae@kgsm.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