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국회 해산을 각오하고라도 다케나카안을 저지시키겠습니까, 아니면 그대로 인정하겠습니까?'(아소 타로 자민당 정조회장) 일본정부가 디플레이션 탈출과 불량채권 대수술을 겨냥해 승부수를 던진 다음날인 31일 아침. 언론은 이번 대책이 확정되기까지의 진통을 공개하면서 국회 해산에 이어 총선거라는 정치적 빅뱅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고 전했다. 은행 불량채권의 발본 처리를 최대 목표로 삼은 이번 대책의 원안은 은행들 입장에선 '청천벽력'에 다름 아니다. 미국식 회계기준의 강제도입과 자기자본 산정방식의 갑작스런 변경은 재무구조의 엄청난 변화를 초래한다. "안그래도 부실덩어리로 의심받아 온 민간은행들이 국제금융계의 문제아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결사항전 이유였다. 은행들의 주장에 정치권도 가세했다. 불량채권을 청소한다며 은행들을 몽땅 찌그러뜨리면 경제 각 부문의 충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게 정치권의 논리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신임을 등에 업고 자신의 처방을 고집했던 다케나카 금융 경제재정상이지만 그 역시 막판에 가서는 몸을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힘을 실어주던 고이즈미 총리는 발표 전날 '여당과 협의하라'며 한발 물러섰다. 대책은 결국 자기자본 산정방식의 변경시기 등 핵심 부분은 어물쩍 넘어가는 것으로 결론났다. 일본언론과 이코노미스트들은 불량채권의 대수술과,은행 공적자금 추가투입이 금융시스템을 위기에서 건질 돌파구라는데 동조하고 있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게이오대 교수는 "불량채권과 디플레이션 해결에는 고통이 따르는 하드랜딩을 피할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다케나카 처방을 무디게 만든 은행·정치권·산업계 목소리는 이론과 현실의 차이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쓴 약을 먹어야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경제논리'는,'버틸 힘이 없으니 나중에 먹겠다'는 현실 앞에 무기력해졌다. 일본정부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위하지만 정작 점수를 매길 곳은 일본의 의지를 시험할 외부다. '일본은 정신 못차렸다'며 개탄해온 국제금융시장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관심거리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