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이가 내 애인이요." 코리아나화장품 유상옥 회장(70)은 사무실에 들어서자 "애인"과 인사부터 나누도록 권했다. 유회장이 소개시킨 여인은 거울을 들고 있는 아리따운 대리석 여인상. 프랑스 조각가 샤를 고띠에의 "아침 (Le Matin)"이라는 작품이다. "아침"을 비롯해 그의 사무실에는 애인처럼 아끼는 골동품과 각종 예술품이 즐비하다. 유 회장은 30년 수집경력의 소문난 "수집광". 고려시대 분단지등 전통 화장용구에서부터 종 포스터 그림 조각등 크고작은 수집품들이 어느덧 수 만점이다. 이런 수집인생의 출발은 70년대 동아제약 기획관리 실장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지인중 하나가 그림에 취미를 붙여보라고 권합디다.경영학 전공인데다 숫자를 다루는 직업이라 인생이 딱딱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지요." 당시 회사가 인사동 근처였던 유 회장은 점심시간에 짬을 내 화랑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보기만 하던 것이 점점 보는 눈이 자랐고 "수집"에 대한 취미가 생겼다. "월급쟁이가 무슨 돈이 있나요.처음엔 제약관련 소품부터 모았지요.훗날 라미화장품 대표로 발령이 나면서 화장이나 여성치장과 관련된 민예품을 모았고.여윳돈 생길 때 마다 한 점,두 점 사들이는 통에 집사람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80년대 들어서는 국립박물관에 있는 박물관학교에 등록해 본격적으로 전통문화재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 당시 멤버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한달에 두번씩 만나 예술이나 문화에 대한 스터디를 하고 있다고. 덕분에 그의 안목은 첫눈에 "진품명품"을 가늠해내는 전문가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화장품이 아름다움과 관련된 업종이지 않습니까.화장품 CEO는 더더욱 심미안이 필요한 사람들이지요." 그의 소장목록에는 "동해"라고 표기된 고지도도 들어있다. 1799년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출판된 세계지도가 그것. 한국이 "Corea"로,동해가 "Korean Sea(한국해)"와 "Gulf of Korea(한국만)"라고 선명히 인쇄돼 있다. "영문 회사명이 Coreana 잖아요.그래서 샀던 것인데 자세히 보니 동해가 우리바다로 표기돼있는 걸 증명해주는 소중한 사료가 아니겠어요." 유회장은 내년말 필생의 꿈 하나를 더 이룬다. 청담동에 "코리아나 아트센터"란 이름으로 박물관을 개관하는 것이다. 갤러리와 뷰티센터가 어우러질 이 공간은 30년동안의 수집품을 한자리에 전시할 계획이다. 우리의 여성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가 되리라는 게 그의 설명. "화장품이 외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는 사업이라면 문화사업은 내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이지요.아트센터는 내적 아름다움과 외적 아름다움을 조화시켜야 겠다는 구상에서 시작했어요.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문화사업은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좋은 문화유산을 모아 함께 나누고 후대에게 남겨주려는 것도 그래서예요. 좋은 작품을 두고 혼자만 보는 것은 의미가 없지요.박물관은 개인적인 꿈이기도 했지만 문화적으로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예술품을 수집해 우리 문화자산을 불리는 데 기여하고 싶은데 돈이 걱정"이라며 웃었다. 글=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