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시 강경읍 강경젓갈시장. 도소매 젓갈점포 70여개가 몰려 있는 국내 최대의 젓갈시장이다. 전국에서 유통되는 젓갈의 60%가 이곳을 거쳐간다. 김장철을 앞둔 11월 초순은 젓갈 성수기. 시장이 온통 젓갈 냄새로 진동하는 때다. 이때쯤이면 폐광 토굴이나 저온창고에서 알맞게 익은 햇젓갈들이 쏟아져 나온다. 일요일인 3일 오후 2시. 강경읍 염천리 골목어귀에 관광버스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다. 경기 경남 대구 서울 등 번호판도 제각각이다. 관광버스에서 선글라스 낀 아주머니들이 우루루 몰려나와 흩어진다. 하루 6백여대의 승용차와 대형 버스가 쏟아놓는 관광객은 줄잡아 1만여명. 반경 5백m에 불과한 읍내가 떠들썩해지는 이유다. "며느리 주라고 한 무더기,시어머니 드시라고 또 한 무더기,내외간 금슬 좋으라고 한 번 더,고맙다고…다음에 또 오시라고 한 번 더…." 남교리 혜정상회 강현순씨의 구성진 '덤 사설'이 숙성창고 안에 울려퍼진다. 한 바가지가 전부인 듯싶더니 덤이 예닐곱 번이 넘는다. 봉지 안에 새우젓이 산처럼 쌓이자 돈을 꺼내든 전라도 할머니의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진다. "아이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크네." 강경에서는 저울 대신 바가지(대박)를 즐겨 쓴다. 푸짐한 인심의 상징이다. 오래 곰삭은 죽젓은 거저주다시피 한다. "덤을 많이 주니까 직접 와서 사는 게 훨씬 이득이죠." 경기 안성에서 왔다는 주부 이난영씨(53)는 5년째 강경을 찾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오징어젓을 맛보던 황순희씨(충남 상기·51)는 계룡산 관광을 마치고 눈요기차 들렀다가 새우젓 오징어젓 명란젓을 5㎏이나 샀다. 삼삼한 맛에 반해서다. 옛날에는 소태처럼 짜야 젓갈이었는데 요즘은 심심한 젓갈을 많이 찾는다. 저온 숙성기술과 냉장고 덕이다. 모퉁이 대동젓갈집 앞에는 택배직원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을 꼼꼼히 살피던 김법철 사장은 "경기도와 서울 경상도쪽으로 보낼 액젓들"이라고 말한다. 가게안 흰색 보드판에는 서울 xx아파트 부녀회,경기 xx김치공장 등 주문이 빼곡이 적혀있다. 오늘 저녁까지 보낼 주문물량. 이 와중에도 전화벨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린다. "지역마다 주문하는 취향이 조금씩 달라요.전라도쪽은 '골탁한(오래 삭은)' 새우젓과 황석어젓을 선호하고 경상도는 '또릿또릿한(덜 삭아 살이 통통한)' 멸치젓과 갈치젓을 많이 찾는 편이죠." 김 사장의 설명이다. 이곳에서 취급하는 젓갈류는 새우젓을 비롯 조개젓 황석어젓 갈치젓 멸치액젓 등 20여가지. 가격은 가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시중에 비해 대략 10∼30%쯤 싼 편이다. 간혹 "비싸다"는 말이 나올라 치면 상인들은 "쌀밥과 보리밥 값이 똑같느냐"고 반문한다. 김장에 많이 쓰는 추젓 상품의 경우 1㎏에 6천원대부터 1만3천원대까지 있고 씨알이 굵은 육젓(6월 새우로 담근 젓갈)은 추젓의 2배인 ㎏당 2만원에서 3만5천원 사이다. 조개젓은 1만원선,오징어젓은 7천원선이고 아가미젓 낙지젓 창란젓은 1만3천원 안팎이다. 명란은 생태알 3만원,동태알 2만4천원으로 구분해 판다. 액젓은 멸치액젓이 1만∼2만원(10㎏)이고 까나리액젓은 2만∼3만원선이다. 맛의 비결은 전국 최고의 수산물을 가려쓰는 젓갈 재료와 저장법에 있다. 1백년 넘은 숙성 노하우도 젓갈맛을 돋보이게 하는 요인이다. 소금도 중요한데 이곳에서는 1년 이상 염수를 빼낸 전북 곰소산(産) 천일염을 많이 쓴다. 강경이 젓갈시장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상인들과 이곳 출신 재경인사,지자체 등이 합심해 노력한 결과다. 상인들은 공동 브랜드 '강경전통맛깔젓'을 만들었고 용기와 포장을 규격화했다. 이곳 출신 재경인사들은 강경젓갈을 알리는 홍보대사를 자청했다. 지자체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지난 97년 시작된 강경맛깔젓축제는 강경젓갈시장을 전국에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지난달 열린 젓갈축제에는 50만 인파가 몰렸고 4백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강경은 일제시대에 원산항과 함께 전국 2대 포구였고 평양 대구와 함께 3대시장으로 꼽혔다. 금강을 따라 내륙으로 가장 깊숙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팔다 남은 생선류를 보관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염장법이 발달했는데 젓갈은 이런 생존 지혜의 부산물이라는 게 이곳 상인들의 얘기다. 강경=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