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금융감독원 기자실. 금감원측에서 '엠바고'(일정시점 때까지 보도유예)를 요청해왔다. 부실 신용협동조합 가운데 최종 정리대상 신협 선정에 관한 내용이었다. 최근 신협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돼온 상황인 데다 확정되지 않은 내용이 전해질 경우 금융시장에서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 금감원의 엠바고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엠바고가 과연 지켜질까'라는 문제 제기가 없지 않았지만 "신협중앙회와 정리대상을 가려내는 경영평가위원회에서 확정되지 않은 내용이 나가지 않도록 하겠다. 평가위 결정내용을 넘겨받아 확정,발표하면 된다"는 금감원측의 설득을 기자들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엠바고는 이틀 만에 깨졌다. 신협중앙회나 평가위 쪽에서 정리대상 숫자가 새나간 것 같다. 엠바고 파기 자체가 이례적인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4일 공식발표 때까지 드러난 금감원과 금융감독위원회의 일처리는 상당히 유감스러운 것이었다. 무엇보다 감독당국의 다짐에도 불구, 신협중앙회의 평가작업이 중간에 새나가는 것에서 '통제력이 상실됐나'하는 의구심부터 든다. 금감원이든,금감위든 업계 위에 군림해서는 안되겠지만 건전한 의미의 통제와 법절차 밟기는 당연히 필요하다. 더구나 이번 사안은 신협 1백개 이상을 집단 퇴출시키는 작업 아닌가. 대국민 발표내용도 부실했다. 밤을 새워 만들었다는 발표문에는 부실 신협이 어떤 근거(법규)에 따라 정리된다는 설명이 부족했다. 발표장에 나타난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기자들 앞에서 예금대지급 업무를 설명하다 말고 휴대전화를 받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금감원이 실무를 담당한다지만 금감위는 부실신협 퇴출작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1998년 6월 은행을 5개씩이나 퇴출시킬 때도 없었던 모습이다. 정권 임기말 행정력 누수현상의 한 단면인 듯 했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임기말 (업계에 대한)행정력 누수 현상이 없도록 하라"고 간부회의 때마다 강조했지만 먼저 집안부터 잘 챙겨야 할 것 같다. 허원순 경제부 정책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