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영웅과 악당만 있는게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정열을 지닌 남녀로 이루어져 있다.무지한 자는 그들을 비난하지만 현명한 자는 가엾이 여긴다" 70여년전 찰리 채플린의 이 말은 변영주감독의 신작 "밀애"에 등장하는 불륜의 주인공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부남과 유부녀의 애정을 다룬 이 작품은 전경린의 소설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각색했다. 이 영화에서 "불륜의 사랑"은 통속적인 드라마로 진행된다. 하지만 결혼이란 제도보다 개인의 행복이 더욱 추앙받는 이 시대의 문화코드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외면할 수만은 없다. 소도시 남해의 아름다운 풍광과 감미로운 멜로디는 침잠한 감성을 한껏 끌어 올린다. 주부 미흔(김윤진)은 의사 인규(이종원)로부터 위험한 게임을 제안받는다. "앞으로 4개월간 사귀어 봅시다.가끔은 섹스도 하면서.그런데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면 지는 거예요.게임은 그것으로 끝나지요." 물론 이 게임의 승자는 없다. 게임은 사랑이 갖는 부담을 털어낸 용어일 뿐이다. 불륜이란 사회적 가치척도를 반영한 용어이지 개인의 입장에서는 사랑이다. 영화는 이 점에 주목한다. 불륜이 인간을 "소진"시키는게 아니라 "소생"시킨다. 미흔은 남편의 외도로 받은 충격에서 헤어나 서서히 건강을 회복한다. 불륜의 경험이 망가진 미흔의 여성성을 재생시키고,단절됐던 남편과의 성관계도 정상화시킨다. "내 생애 꼭 하나뿐인 특별한 사랑"을 경험한 미흔의 앞날은 예전보다 한층 밝아질 것임을 기약한다. "남자의 순수한 사랑을 받은 여자는 평생 고독하지 않다"는 바이런의 말처럼. 일본군 위안부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를 만든 변영주감독 답게 이 상업영화에서도 여성적인 시각을 드리웠다. 정사장면에서 미흔의 섬세한 반응,속옷차림으로 남자집으로 달려가는 대담함,불륜을 들켰을 때 미흔의 당당한 이혼요구,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이웃집 가게 여주인과 미흔의 정서적 교감 등이 그것이다. 남해의 소읍을 배경으로 택한 것은 불륜에 대한 냉정한 사회적 시선을 즉각 반영하는 장치다. 이웃 사람들이 감시자가 되는 작은 마을에서 이들의 불륜은 백일하에 드러난다. 인규의 사고는 사회적 단죄를 뜻한다. 결국 불륜의 주인공들은 내면적으로는 삶의 의미를 얻지만 외형적으로는 파멸을 맞는다. 어쨌든,이 영화는 이혼율 세계3위란 한국의 결혼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다만 문어체 대사가 더러 보이고 조연들의 연기가 부조화를 빚어낸 점 등은 영화보기를 방해한다. 시사회를 본 관객들은 인터넷에서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미흔이 진정한 사랑을 경험했다는 관점에서 해피엔딩"이란 시각이 있는가 하면 "가정파탄과 결실없는 사랑이란 점에서 슬픈 멜로영화"란 평도 나온다. 8일 개봉. 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