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해온 부처로 '국세청'을 빼놓을 수 없다. 징세권과 조사권을 앞세워 기업부문 개혁과 언론 개혁을 '힘'으로 뒷받침한 곳이 국세청이다. 국세청은 사상 유례없이 언론사 사주를 탈세혐의로 대거 감옥에 보냈다. 또 대기업들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통해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지배구조 개혁을 채찍질했다. 최근에는 부동산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자 투기 혐의자들에 대한 대대적 색출작업에 나서 시장을 흔들어 놓고 있다. 국세청이 이처럼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은 정보와 조사권, 징세권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갖고 있는 기업과 개인의 경제 관련 정보는 정부 다른 부처의 데이터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을 것"이란게 손영래 국세청장의 설명이다. 국세청은 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초로 탈세 기미가 보이는 개인이나 법인에 대해 조사권과 징세권을 발동한다. 그 결과에 따라 기업과 개인의 운명을 한 번에 뒤바꿔 버릴 수 있는 곳이 국세청이다. 80년대 잘 나가던 명성그룹을 단숨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만든게 단적인 예다. '국세청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세청의 '파워'는 막강하다. 그 '파워'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전국 1만6천여명의 세무공무원을 이끌고 있는 국세청장이다. 손영래 청장은 지난해 서울지방 국세청장으로 재직하면서 사상 유례없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주도하면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국세청의 핵심 보직으로 꼽히는 조사국장을 호남 출신으로는 두 번째로 지냈을 정도로 치밀한 업무추진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국세청이 '파워'를 가질 수 있는 실질적인 원천으로 '전문성'을 꼽는다. "국세청 간부들은 대부분 30년 정도의 기간을 한 업무에만 종사해 왔다. 따라서 세금문제에 관한 한 한 마디만 들어도 열 마디를 이해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손 청장의 말대로 국세청의 1급 3명이 모두 세무 분야에서만 30년 가까이 근무해 왔다. 손 청장과 고시 동기(행정고시 12회)인 곽진업 차장은 경남 김해 출신으로 부산지방 국세청장 시절 파이낸스사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주도했다. 전체 세수의 50% 이상을 거둬들이는 서울지방 국세청의 봉태열 청장은 호남 출신으로는 처음 조사국장을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 장춘 중부지방국세청장도 72년 행시 합격 이후 줄곧 국세청에서 잔뼈를 키워 왔다. 국세청 조사국은 '국세청 내의 국세청'으로 불린다. 세무조사 지휘계통이 국세청장-조사국장-지방청 조사국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사국 직원들은 막강한 파워만큼이나 입이 무겁다는 소리를 듣는다. 국가 기밀을 다루는 정보기관을 능가할 정도로 정보보안에 철저하다. 현재 조사국을 이끌고 있는 이주석 국장은 행시 13회로 지난 99년 안정남 청장 시절 국세행정 개혁기획단 단장을 맡아 지방 세무민원(民怨)의 대상이었던 지역담당제도를 폐지하는 추진력을 보여줬다. 지금은 부동산과 관련된 세무조사 및 자금출처 조사를 총지휘하고 있다. 조사와 관련된 또 하나의 요직은 서울청 조사4국장이다. 조사4국은 청장의 '특명'을 받아 조사업무를 수행한다. 대기업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 등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90년대 현대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맡은 곳도 조사4국이다. 소득세과장을 지낸 김호기 국장이 지난 8월 승진과 동시에 이 자리를 맡았다. 손 청장은 강원도 출신인 김 국장을 발탁함으로써 국세청이 이번 대선에서 지역색을 털어내고, 정치권과 거리를 두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밖에 세수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기업의 세금문제를 총괄하는 법인납세국은 대구 출신인 이재광 국장이 지휘하고 있다. 막강 파워를 자랑하는 국세청에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4급 이상 고위직의 연차가 너무 벌어져 있다는 것이다. 청장을 비롯 1급과 주요 간부들은 행시 12,13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터에 과장급은 한참을 뛰어넘는 21,22회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내부 인사적체는 국세청의 '힘'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는 고질적 현안이다. 임용을 기준으로 한 국세청 간부들의 '출신 성분'이 복잡하다는 것도 인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과장급 이상 간부는 행시 출신과 일반승진자(비고시), 육사 출신 등이 뒤섞여 있고,일반 실무직원들도 세무대 출신과 비고시 일반직 등으로 나뉘어 있어 인사때마다 '자리 안배'를 놓고 인사권자가 골치를 앓는다. 이 때문에 국세청은 효율적인 인사가 어려운 조직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