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MIT로 불리는 독일 아헨공대(RWTH Aachen)가 8일(현지시간) 허영섭 녹십자 회장에게 최고 영예인 '명예 세너터(Ehrensenator)'를 수여했다. 명예 세너터란 아헨공대를 대표하는 원로자문회의로 현재까지 9명이 이를 받았으며 외국인이 받기는 지난 1870년 개교 이래 허 회장이 처음이다. 부르카트 라우후트 아헨대학 총장은 이날 현지에서 열린 명예 세너터 수여 축하연설에서 "68년 아헨대학 기계금속 석사학위를 받은 허영섭 동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B형 간염 백신 헤파박스와 세계 최초 유행성 출혈열 백신 등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한국에 첫 민간연구재단을 설립해 생명공학산업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며 "연구개발(R&D)을 중시하는 기업인으로서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허 회장은 한국보다 뒤떨어진 중국과 인도네시아 북한 등에 진출해 인류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B형 간염 퇴치 공로훈장을 받는 등 모교의 명예를 빛냈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엔 막스 후버 독일 학술교류처 부총재와 데오 좀머 '디 자이트' 전 발행인, 코식 독일연방 국회의원, 후베르투스 폰 모르 주한 독일 대사, 아헨대학 평의회 위원들과 9개 단과대학장 등 2백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측에서는 권이혁 전 문교부 장관과 황원탁 주 독일 대사,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이춘식 전 KAIST 원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아헨공대에서 열린 명예 세너터 수여 행사장에서 라우흐트 총장을 만났다. "지난 64년 허 회장이 아헨공대 금속학과에 입학할 당시 어느 누구도 38년 후 모교를 빛낸 동문으로 최초의 외국인 명예 세너터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힌 라우흐트 총장은 "이공계 출신 CEO 허 회장은 생명공학 기업인으로서의 업적 외에도 민간단체인 한독협회장으로서 두 나라간 우호 증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도 90년대 접어들면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나타났다"며 "이는 과학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대우나 보수가 적었기 때문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이 재밌고 쉬운 것을 좋아해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 같다는 분석이다. 그는 90년대 중반에 교육부와 전국공대 총장들이 이공계 기피 문제를 거론하고 그 해결책으로 어린이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지난 96년부터 전국적으로 'PUSH(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and humanity)'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7-10세 어린이들을 대학에 정기적으로 보내 재밌는 과학실험과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하나라며 아헨공대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7-10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과학프로그램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헨공대를 방문하는 지방 어린이에게 1인당 교통비로 최대 2백50유로를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14-16세 청소년들을 대학부설 연구소로 초청해 교수, 연구원들과 함께 과학실험을 하고 과학과 연계된 음악, 미술 등의 축제를 여는 '사이언스의 밤'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며 "반응이 아주 좋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의 이공계 진출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며 여고생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은 생활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실험실로 꾸며진 트럭을 전국의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 과학놀이를 하는 '아헨 과학트럭'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은 국가의 미래가 달린 문제입니다. 학생들이 이공계 공부를 기피한다고 수업 수준을 낮춘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는 "이공계는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배울 수 없다"며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어린이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려서부터 이공계 학문의 기본이 되는 수학이나 과학 과목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헨(독일)=강혜구 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 [ 협찬 : 삼성 포스코 산업기술평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