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대주주와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해 기업의 재무 투명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회계제도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된 개혁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사업보고서 등에 대한 CEO와 CFO의 인증(서약)을 의무화해 분식회계가 적발되면 최고 5년의 징역형과 민사책임을 지고,사실상 업무지시자(대주주 등)에 대해서도 민사책임을 부과하도록 증권거래법을 개정한다. 둘째,감사나 감사위원회 위원의 전문성 요건을 강화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셋째,한시적으로 도입한 내부 회계관리제도 및 내부 고발자보호제도를 항구적으로 법제화한다. 넷째,연결재무제표 중심의 공시제도로 전환하고 연결재무제표 제출시한을 1개월 단축하며,분·반기보고서 제출 시에도 연결재무제표 제출 의무화를 검토한다. 다섯째,스톡옵션에 대해 공정가치법에 의한 평가를 의무화한다. 여섯째,회계법인의 컨설팅업무와 감사업무 간 방화벽 설치를 의무화하고,이해상충 소지가 큰 컨설팅업무의 수행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일곱째,증권선물위원회 회계감독기능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금융감독원의 관련조직 및 인력을 대폭 확충한다. 우리 정부는 1998년부터 회계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을 그야말로 쉬지 않고 발표했고,실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도입됐다고 해서 반드시 실천이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회계의 신뢰성은 제도 도입보다는 대우그룹과 관련된 대규모 징계와 고발,상장·등록기업들의 서든데스 제도 도입,예금보험공사에 의한 대규모 민사소송 등 시장 벌칙의 강화가 있고서야 실질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했다. 회계정보와 감사서비스 시장은 기업 내 회계책임자와 경영진 및 회계감사인 등 신분적 특권을 부여 받은 자들에 대한 불이익(disincentive)이 분명해져야 작동되는 시장이며,인센티브에 의해 움직이는 전통적인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제시된 개혁안 중에서도 CEOㆍCFO 및 사실상의 의사결정권자인 대주주에 대한 벌칙 강화와 회계법인의 컨설팅업무 금지 및 내부고발자에 대한 차별대우 금지 등이 실질적으로 효과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다만 컨설팅 금지는 컨설팅의 종류에 다른 제한보다는 금액 제한이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며,방화벽은 빛깔 좋은 개살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제도적으로 중요한 분야는 감사위원회 위원의 자격요건,특히 독립성과 전문성의 강화다. 선진국 수준의 감사위원회 운영을 위해서는 자격 있고 독립적인 감사위원들이 필수적이지만,강화된 자격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감사위원의 숫자는 아마 극소수에 그칠 것이다. 따라서 요건을 강화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감사위원이나 감사위원 후보들에 대한 교육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하나,개혁안의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내부고발자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하는 방법과 적극적으로 신분을 보장해주는 방안이 있다. 다만,사소한 사항에 대한 고발이 빈발해 기업들이 불필요하게 괴로움을 당하지 않도록 사전에 내부고발 대상과 기준을 분명히 정하고,내부 고발에 대한 조사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실시해야 할 것이다. 결산속보제도의 부활도 고려해볼 만한 방안이다. 그리고 현재 제안된 개혁방안에는 증권선물위원회의 회계감독권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금융감독원의 관련 조직 및 인력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이 담겨 있으나,지금까지 이 분야에 대한 감독이 부실했던 것은 조직·인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 기구의 독립성이 확보돼 있지 못한데 더 큰 원인이 있다. 우선 증권선물위원회의 위원장에는 반드시 전문성이 확립된 인사가 임명돼야 할 것이며,증권선물위원회의 민간위원 비중이 과반수가 되고 위원회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회계시장의 개혁여부는 결국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 전문성과 도덕성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ilsupkim@ewha.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