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시 가계대출 규제에 나섰다. 각종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신규 가계대출이 6조원을 넘어서자 행정지도를 포함하여 대손충당금 비율과 BIS 자본비율 산정시 위험가중치를 높이는 방안도 추진하는 것으로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가계대출문제는 더 이상 국내 언론의 단골메뉴가 아니다. 해외 유력 언론도 가계대출이 금융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수차례 거론하고 있다.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에서 신용위기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매킨지 보고서의 헤드라인을 인용하고 주요 은행의 무수익 여신,신용카드 연체율 현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한국에 투자하는 이들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가계대출만이 문제가 아니다. 은행권의 중소기업대출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금년 들어서 늘어난 기업대출의 대부분이 중소기업에 공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은행권의 총대출에서 차지하는 중소기업대출 비율도 41%에 달해 가계대출 비율 45.8%에 육박하고 있다. 결국 대기업이 번 돈을 가계와 중소기업이 가져다 쓰는 셈이다. 자금이 대기업 대신 중소기업에 몰리는 것은 환영할 만한 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대기업들은 넘치는 돈을 설비투자 대신 금융자산의 운용에 사용하고 있으며,중소기업도 빌린 돈을 설비투자보다 운전자금으로 쓰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 은행이 '노마진' 대출세일을 벌인다는 언론보도를 접하면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같은 기현상은 4년 이상 지속된 저금리정책에 근본 요인이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단행된 금융자유화는 그동안 족쇄에 묶여있던 소비자신용 즉 가계대출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됐으며,저금리정책으로 조성된 과잉유동성은 부동산 인플레를 동반했다. 정부는 그동안 강력한 부동산 투기 억제책을 내놓았지만 그 때마다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최근 재건축 요건을 강화하는 부동산가격 안정책도 저금리 정책 기조에 변함이 없는 한 마치 풍선 한쪽을 누르는 것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경제는 붐-버스트 사이클의 확장기에 있다고 본다. 그 근거로 가계 기업 정부부문 저축을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는 국민소득으로 나눈 값인 총저축률이 2001년 말 29.9%에서 2002년 상반기 26.9%로 크게 감소하는 추세를 들 수 있다. 총저축률 감소는 가계 저축률의 하락 즉 소비증가에 가장 큰 요인이 있으며 자산가격의 상승,신용카드 보급 팽창에 따른 소비자신용의 확대에 기인한다. 또 다른 근거로 2분기 자금동향을 들 수 있다. 가계의 저축이 금융회사를 통해 기업의 투자활동으로 사용되는 것이 정상이나,가계 기업 모두 금융회사로부터 자금을 끌어다 쓰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금융회사가 자금을 중개하는 대신 마치 자가발전하듯이 신용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으며,현재의 저금리정책이 결코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없음을 시사하는 단적인 예다. 저금리정책은 2001년 한국경제가 마이너스성장을 이겨낸 일등공신이었다. 비록 신용불량자를 양산해 사회문제로 부각되었으나,내수 주도의 성장은 곧 한국경제가 선진화하고 있음을 전세계 언론이 찬양했다. 그러나 그 저금리가 한국경제를 옥죄고 있다. 대기업이 불확실한 장래에 몸을 사리는 사이,팽창하는 유동성은 가계로 중소기업으로 마구잡이로 흘러들어가고 있고,저축률의 감소는 경상수지를 압박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일부에서 제기하는 일본식 장기불황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대로 저금리를 방치할 때 '조건만 맞으면' 거품이 일시에 터질 가능성이 농후한 버스트 사이클로 진입할 것이 확실하다. 필자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금리인상에 유보적이었으나,상황은 전혀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계대출에 대한 직접규제,각종 투기억제책 등 미시적 수단을 거의 소진한 정부로서는 사실상 금리인상이란 거시적 대응만 남은 셈이다. 연초 금리인상의 시기를 놓쳤던 정부로서는 호미로 막아도 될 일을 가래로 막게 된 셈이다. kimks@skk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