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는데,아직도 대선후보자군이 고정되지 못했고 또 정치권이 하루하루 요동치는 모습이다. 이회창 정몽준 노무현 후보가 표심을 잡고자 동가식서가숙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정작 유권자들은 선택지가 확실하지 못해 어리둥절하다. 또 하루가 멀다하고 국회의원들이 서너명씩 한나라당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도 혼란스럽다. 선거는 이기는 데 있다. 역사는 2등을 기억할지 몰라도 선거는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후보들은 선거에서 1등을 차지하기 위해 전략적 사고·행위에 몰두한다. 단일화도 도모하고 세 불리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거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 것 같지만,그건 당사자들의 관심사일 뿐이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누가 이기고 지는가 하는 문제보다 누가 어떤 '콘텐츠'로 이기고 지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어떤 정책적 이슈,이념적 입장에 의해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가 하는 문제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좋은 '콘텐츠'와 중요한 '콘텐츠'를 가지고 후보자들이 서로 경쟁하며 다투기를 바라는 것이지,별로 중요하지 않은 '콘텐츠'를 가지고 다투는 것에는 흥미 없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발전에도 백해무익할 터이다. 이 문제는 수능시험과 비슷하다. 수험생들의 입장에서는 난이도가 중요하다고 아우성치지만,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난이도보다 문제의 적절성을 따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사회에서는 수능만 치르고 나면 수험생들의 대학수학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됐는가 하는 문제보다,'물수능'이냐 '불수능'이냐 하는 문제로 논란을 거듭해왔다. 지금 한국정치에서는 누가 이기는가 하는 문제가 첨예의 관심사다. 그러다 보니 누가 어떤 정책을 가지고 승부수를 던지는가 하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이 후보의 한나라당에서는 대세몰이에 적극적으로 나서 오려는 사람은 막지 않는다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의 자세다. 그러나 정체성을 가진 정당이라면 권력의 양지만을 좇는 '정치꾼'과 소신 때문에 당적을 옮기는 '정치인'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정당이란 오려고 하는 사람을 모두 받아들이는 노숙자 합숙소와 같은 곳이 아니다. 받아들이려면 적어도 '돌아온 탕아'와 같은 정치인들만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지,복권 사는 심정으로 투기를 일삼는 '정치꾼'을 받아들여선 안된다. 옥석을 구분하지 않고 대세몰이에 나서는 것은 결국 '이기는 것이 최고선'이라는 승리 이데올로기에 오염돼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또 정 후보와 노 후보가 단일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당위와 명분은 과연 있는가. 양자 사이에 정책적·이념적 최소공배수는 없다. 이 두 후보는 살아온 경륜이 다르다. 따라서 정치적·이념적 성향은 물론,발가락조차 닮은 것이 없다. 다만 단일화를 하여 표를 합하면 이 후보를 이길 수 있다는 전략적 사고뿐이다. 이런 덧셈 계산법에 입각한 단일화는 그나마 내각제라는 일정한 정치적 목표를 두고 성사됐던 5년 전 DJP 연합보다 못하다. 그런가 하면 1986년 김영삼·김대중 후보에 대한 단일화 열망과도 같지 않다. 당시에는 민주와 반민주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유권자들 사이에 '친창(親昌)'성향과 '반창(反昌)'성향이 발견되고 있다고 해도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정·노 후보가 발가락조차 닮은 것이 없는데,그나마 공감대가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하겠다는 승리이데올로기뿐이다. 지금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는 것은 후보자들이 바로 이 승리이데올로기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승리이데올로기의 위력은 대단하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며 또한 이를 상회하는 강력한 힘 때문이다. 그러나 승리이데올로기는 천박하다. 그것은 염치 불구하고 표를 모으려는 후보자 권력의지의 이데올로기일지언정,유권자들이 바라마지않는 정책적 '콘텐츠'는 아니다. 유권자들은 각 후보가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을 내세우며 당당하게 표를 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이 경우 유권자들은 대선의 1등뿐만 아니라 2등도 3등도 기억할 것이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