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00:05
수정2006.04.03 00:07
전라남도 무안군의 흑산도를 "자산(玆山)"이라 부르며 유배생활을 하던 정약전 선생이 근해의 수산물들을 기록한 저서가 "자산어보(玆山漁譜)"다.
일종의 어류학 전문서인 이 책에는 수산동식물 2백27종에 대한 형태와 명칭,맛과 약효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943년 여러 사본을 비교하여 종합 정리한 한글본을 읽고 있노라면 그 치밀한 관찰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더위에 지친 소에게 먹인 낙지,임산부의 병을 고친다는 미역,장이 깨끗해지고 술을 해독하는 홍어 등 바다에서 나는 풍부한 먹거리들이 감칠맛 나게 묘사되어 있다.
정약전 선생이 언급한 다양한 재료들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바로 해물탕이다.
일반적인 탕처럼 푹 고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재료들을 냄비에 가득 넣고 센 불에 화끈하게 끓여내는 것이 포인트.
해물의 선도는 물론이고 손질에 의해서도 맛이 좌우된다.
새우는 등쪽의 내장을 빼내야 고소한 맛을 배가할 수 있고,오징어는 껍질을 벗겨야 텁텁함을 피할 수 있다.
날씨가 추울때 먹으면 제격인 해물탕집 세 곳을 소개한다.
복정집(송파구 신천동 먹자골목 중간쯤,02-418-8181)=점심,저녁,평일,주말 가릴 것 없이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집.
해물탕의 기본은 신선함인데 이 집의 재료들은 언제나 뛰어난 선도를 지닌다.
이것이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는 비결.
멸치로 육수를 만들고 무와 콩나물을 넣은 냄비에 각종 해산물을 가득 채운 후 미나리를 수북히 올려 내놓는다.
한소끔 끓기 시작하면 상큼한 향이 올라오는 미나리를 먼저 먹고,콧속까지 미나리 향이 퍼질 때쯤 살짝 익은 낙지를 꺼내 먹는다.
조개류는 끓일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지만 낙지는 질겨지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입에 넣어야 한다.
10여 가지의 각종 해산물을 먹고 나면 입에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다음 코스는 볶음밥.
김,미나리,참기름을 넣고 볶는 이 집의 별식은 해산물로 배를 채웠다고 1,2인분 모자라게 시키면 반드시 추가 주문을 하게 된다.
처음엔 비싸게 느껴지지만 (1인분 1만5천원) 식사를 마치고 밀려오는 포만감은 톡톡히 제값을 한다.
원조 밀리네잡탕(마포구 염리동,02-719-5113)=이화여대 전철역 5번 출구에서 나와 왼쪽 골목으로 1백m쯤 걸으면 "원조 밀리네 해물잡탕"을 발견할 수 있다.
가게 입구 냉장고에 가득 담긴 꽃게며 새우,조개,미더덕의 탱탱하고 윤기나는 모습이 군침을 돌게 만든다.
서산 꽃게만을 사용한다는 안내판이 메뉴판 옆에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뚜껑이 덮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내오는 해산물은 종류와 양에서 단연 으뜸이다.
이 집의 유명세 탓인지 끊임없이 손님이 몰려들어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하지만 해물잡탕 하나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싱싱한 게는 끓이면 그 향이 국물에 깊게 배는데 껍질까지 바삭거릴 정도로 맛이 좋다.
볶음밥도 좋지만 매콤하게 무쳐 내오는 한치냉면이 꽤 인상적이다.
원미 해물버섯 매운탕(마포 홀리데이인 호텔 건너편 성지빌딩 뒤,02-717-7710)=해물탕으로 출발해 이제는 버섯 매운탕까지 메뉴를 확대한 마포의 명소.
재료로 들어가는 해산물의 종류와 양이 적어 식도락가들의 핀잔을 듣고 있지만 얼큰한 국물맛은 상당한 수준이다.
콩나물에서 나오는 시원함과 매콤한 양념이 어울려 만들어낸 독특한 맛이 인근 샐러리맨들의 퇴근길을 붙잡는다.
해물탕만큼 만들기 쉬우면서도 맛내기 어려운 음식이 있을까?
재료의 어느것 하나 조금만 신선도가 떨어져도 씁쓸한 맛이 올라오는 것이 해물탕의 특성인데 이 집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요즈음 맛의 편차가 심하다.
신김치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이 집의 볶음밥을 권하고 싶다.
김유진.맛 칼럼니스트.MBC PD showboo@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