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와 '자율 규약'은 어떻게 구별될까. 여러 이론이 있겠지만 정부 규제는 '최소한의 범위'내에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건전한 시장,튼튼한 금융회사 육성을 위한 시장 감시자로서의 사전조치를 꼭 '규제'로 볼 것인지는 다른 문제다. 정부의 규제개혁위원회가 지난 13일 내린 한 건의 결정은 이런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규개위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은행업감독규정 개정안을 심의해 '불가' 판정을 내렸다. '은행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당기순이익의 10%를 내부에 적립케 한다'는 적립금제도 도입에 관한 안건이었다. 금감위와 금융감독원이 이 규정을 만들기로 한 것은 은행들이 올해 사상 최대규모로 이익을 내면서 일부에서 '돈잔치' 조짐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국내은행들은 지난 9월말까지 5조4천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이렇게 되자 주주들은 높은 배당을 요구하고 있고,은행들은 자사주를 사들여 임직원에게 나눠주려는 등 복리후생에도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같은 대규모 이익이 어디서 비롯됐는가 하는 점이다. 내년 이후 이런 이익창출이 가능하겠는지도 짚어봐야 할 문제다. 제일은행에만 16조원을 비롯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은행권에는 혈세로 조성된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은행 이익이 은행원들이나 주주들이 잘해서만 거둔 성과는 아니란 얘기다. 내년에는 은행 수익이 한풀 꺾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업과 달리 은행은 좌초하면 공적자금을 부어넣어 살릴 수밖에 없는 국가경제의 중추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당국은 '이익금의 10%를 내부에 적립하라'는 규정을 마련했다. 무한정 쌓아나가란 것이 아니고 자기자본의 5.5%가 될 때까지 저축하란 것이었다. 이 적립금은 없어지거나 다른 곳에서 빼앗아가는 것도 아니다. 내부에 쌓아뒀다 적자를 내는 등 형편이 어려울때 적립 은행이 쓸 수 있는 비상식량이다. 그런데 규개위는 은행의 자율권을 제약한다며 시행을 막았다. 만에 하나 일부 은행이 훗날 탈을 내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정작 규제해야 할 것과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규제해선 안되는 것에 대한 정리부터 시급하다. 허원순 경제부 정책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