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이 세상은 연극무대 .. 張惠蘭 <한양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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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례행사가 된 고교 3년생과 재수생들의 대입수학능력시험이 끝나 12월 2일에 있을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대학마다 수시모집 등의 다양한 전형방법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지만,입학시험의 큰 테두리는 역시 정시모집이다.
요즘 뚝 떨어진 기온처럼 잔뜩 웅크려지는 게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기분일 것이다.
일단 수능을 마쳤으니 해방감이야 있겠지만 그것도 잠시,가슴은 무겁고 허전하다.
가채점해 본 점수가 생각만큼 안나와 속 상하고,평소 보던 모의고사 수준만큼 됐다 해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걱정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당신 좋으실 대로(As you like it)'를 보면,언변 좋은 신하 자크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이 세상은 연극 무대다.그 속의 모든 남성과 여성은 연극배우에 불과하다.그들은 퇴장할 시간과 입장할 시간이 있으며,각자는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연출하며…"라고 했는데,이 말이 답답할 때 다소 위로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앞으로의 진로를 어떻게 정해야 할 지 아직 잘 모른다.
고수입을 올리는 방면으로 가거나,본인의 적성을 살리는 전공을 택해야 한다고들 하지만,실제 선택을 할 때에는 기존의 명분 좋은 학과·대학,그리고 부모님의 취향도 몰라라 할 수 없는 게 많은 학생들의 고민이다.
젊은이들의 가슴을 어둡게 하는 것이 또 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상황이다.
물론 부모님 슬하에서 학비 걱정하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는 경우도 많지만,경제가 점점 나빠져가고 있다니 마음 편치 않은 수험생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인생을 큰 마음먹고 살자.
셰익스피어가 얘기하는 '연극으로서의 인생'은,관조하는 마음을 갖고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기뻐하지도 말고 순리대로 살며 그 나이에 맞게,무대상황에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라니 말이다.
20세기의 시인 엘리엇(T S Eliot)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현대인의 일상생활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겨울 새벽의 황색 안개 아래 그 많은 군중이 런던브리지 위로 걸어가고,나는 죽음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망쳐놓을 줄 몰랐다."
황폐해진 대도시 군중의 생기 없고 애정 없는,그리고 신뢰도 없는 삶을 그대로 지옥에 비유했다.
우리의 수험생들은 이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
공부의 압박감에 시달리던 초등학생이 자살을 했다는 얘기는 충격적이다.
뭔가 달라져야 한다.
로마 시인 오비드(Ovid)의 '변신(The Metamorphoses)' 제15권에서 철학자가 한 말을 상기한다.
"왜 죽을 것을 두려워하는가? / 인생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악몽…/ 나는 인간들이 본 적 없는 거대한 미지수에 대해 노래하리라…"
이 말 역시 눈앞에 닥친 어려움에 좌절하지 말고 인생의 무게에 짓눌리지 말 것을 암시한다.
인문학이 있어왔고 아직도 가르쳐지고 있는 이유는,삭막한 기술과 금전이 지배하는 세상도 알고 보면 사람들이 움직여가는 세상이라는 자각에 바탕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은 결코 돈이나 지식이 횡포를 부리는 곳이 아니어야 한다.
짧은 지식을 갖고도 건강하게 생활하고 숨돌릴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 교육에서 인문학을 전보다 더 폭넓게 가르쳐야 된다.
왜냐하면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은 그것 만으로 행복해 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올 한해도 한달 반밖에 남지 않은 지금 우리는 새 대학,새 대통령,그리고 새해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희망찬 모습으로 대학진학을 꿈꾸며 막바지 입시공부를 하고 있는 수험생들도 있겠지만,혹시나 기대에 못미친 시험결과에 재수를 할까 생각하는 수험생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즉 좋은 학교에 가거나, 혹은 낮춰서 합격될 곳으로 가거나, 또는 재수 삼수를 해도 괜찮다.
겁없이 살자.
우리 모두 태어났으니 죽게 마련이다.
서두르지 말고 내 인생을 아끼고 사랑하며 매일매일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 보자.
벽에 부딪칠 때마다 용기를 내어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