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고위 관계자는 17일 조중훈 회장 타계 직후 "한진그룹 회장은 그동안 국내외에서 그룹의 실질적인 대표 역할을 맡아온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장자)이 고인의 유지에 따라 승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한진그룹의 후계 경영구도는 조양호 회장을 축으로 현 체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게 됐다. 그러나 한진은 지난 96년 조양호 회장이 그룹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이미 계열사 경영은 4형제가 나눠 맡는 방안을 추진해왔던 터여서 그룹 분할은 보다 빨라질 전망이다. 한진그룹이 이날 "한진그룹은 현재와 같이 항공(조양호 회장.53) 중공업(조남호 부회장.2남.51) 해운(조수호 부회장.3남.48) 금융(조정호 부회장.4남.44) 등 4개 소그룹별 독립 경영방식에 따라 계속 운영되고 한진의 브랜드를 연결고리로 그룹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한항공 한진 한국공항 등 항공 관련사는 장남인 조양호 회장이 맡고 있고 한진중공업 한일레저 등은 차남 남호씨가, 한진해운 거양해운 등 해운 관련사는 3남인 수호씨가 각각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4남 정호씨가 관장하는 메리츠증권은 이미 3년 전에 계열분리됐으며 동양화재 한불종금 등의 금융계열사도 정호씨 계열로 편입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이들 형제는 고 조중훈 회장의 뜻에 따라 자신이 맡고 있는 회사에서 오랫동안 실무경험을 쌓아 해당분야에서 전문적인 경영능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양호 회장의 경우 지난 74년부터 대한항공에서 근무를 시작해 27년간 주요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부회장도 78년 한일개발에 입사해 23년 동안 국내외 주요 부서를 거치며 업무경험을 쌓았고 조수호 한진해운 부회장 역시 85년 한진해운에 입사해 16년간의 실무경력을 갖고 있다. 조정호 메리츠 증권 부회장도 89년 한진투자증권에 입사해 12년간 경영 수업을 받은 뒤 경영전권을 물려 받았다. 하지만 이들 4형제가 단일그룹의 울타리 안에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조양호 회장은 최근 그룹을 항공 해운 중공업 금융 등 4개 소그룹으로 쪼갤 것이고 이를 위해 계열사간 지분 정리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있다. 실제로 한진그룹은 이날 "각각 소그룹을 맡고 있는 형제간 계열분리 작업은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장기 계약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지 '한진' 브랜드를 유지할 뿐 그룹은 4형제가 분할해 독립 경영한다는 얘기다. 물론 계열분리를 위해서는 지주회사격인 대한항공의 계열사 지분들을 대거 정리해야 하고 수조원대의 계열사간 지급보증도 끊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자금사정 때문에라도 빠른 시일 내에 완료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익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대한항공 한진해운은 물류 기업으로서 시너지가 있고 한진해운과 한진중공업은 해운사와 조선사라는 보완관계가 있다. 이들 3사와 동양화재 역시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 물류기업의 특성상 소요되는 막대한 보험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 동양화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한진그룹의 계열분리가 이뤄지더라도 최소한 시너지를 구현할 수 있는 형태의 느슨한 연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즉 '구획을 정리하는'선 정도에서 계열분리의 모양새를 띠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결국 이들 형제는 관련 업종별로 철저한 경영수업을 받아 독립적으로 책임 경영을 하면서도 초일류 수송그룹이라는 한진그룹의 모태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