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균 대한투자신탁증권 사장은 가끔 기자실에 들러 이런 저런 업계 현안을 토론하기를 즐긴다. 얼마전에는 퇴근시간이 가까울 무렵 송이버섯이 제철이라며 송이버섯 한 접시와 양주 한 병을 들고 기자실에 나타났다. 김 사장은 나이로 따지자면 한참 후배뻘인 젊은 기자들과 섞여 앉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그는 이같은 자리를 통해 증권업계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기도 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건지기도 한다. 김 사장이 기자들과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지난 68년부터 72년까지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했기 때문. 기자를 그만두고 경제관료로 변신해 재무부 경제기획원 국무총리실을 두루 거친 그는 언론계 뿐만 아니라 각계 각층의 인사들과도 폭넓은 관계를 맺고 경영에 도움을 받고 있다. 기업이나 금융기관은 관계 학계 법조계 등 점점 더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추세다. 많지는 않지만 김 사장같이 기자에서 CEO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이들도 찾아 볼 수 있다. 이들은 전문가는 아니지만 상식에 기반한 균형감각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다. 이종대 대우상용차 회장은 지난 67년 동아일보에 들어갔지만 75년 이른바 동아투위사건때 해직됐다. 이후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고 산업연구원과 기아경제연구소에 근무하다가 기아그룹이 한창 어렵던 97년 기아그룹 경영관리단 단장을 맡으면서 CEO로 데뷔했다. 요즘은 대우자동차 법정관리인 겸 회장으로서 GM매각 이후의 처리작업을 맡고 있다. 엔지니어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그가 기아그룹과 대우자동차같이 복잡한 대기업문제를 처리할 수 있었던 비결중 하나는 기자때처럼 "회사안의 전문가 실무자의 의견을 열심히 듣고 정부부처와 은행의 최고책임자에서부터 말단직원까지 격의없이 두루 만났다"는 점. 그는 "수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엇갈린 의견을 모아가는데도 언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95년부터 삼성그룹의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를 이끌면서 기업경영과 경제운용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최우석 사장은 62년 한국일보 기자로 시작해 중앙일보 편집국장 주필을 역임했다. 기자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기로 소문난 그는 학사지만 연구소 박사들보다 지식의 폭과 깊이가 더 있다고 할 정도다. 오랜 기자생활동안 몸에 밴 탁월한 현장감각과 각계 고위층에 구축한 네트워크로부터 수집한 고급정보,왕성한 독서를 통해 쌓은 지식 등을 결합해 트렌드를 제시하는데 탁월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연구소를 맡은 이후 시의적절한 리포트를 최대한 신속하게 내놓고 있으며 인터넷사이트는 세계 비영리사이트중에서 가장 조회수가 많도록 키워냈다. 양인모 삼성엔지니어링 사장과 원대연 제일모직 사장도 3~4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지만 기자생활동안 터득한 감각을 경영에 활용하고 있다. 양 사장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을 만나는데 거침이 없다. 지난 여름 베트남 총리와 국방장관 일행의 방한을 기념하는 리셉션장에서는 가장 먼저 총리에게 달려가 어색한 분위기를 당장 바꿔놓는 등 기자 특유의 친화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원대연 사장은 홍보전략을 진두지휘하며 웬만해선 인터뷰요청을 마다하는 법이 없을 정도로 언론감각이 탁월하다. 대화를 할 때면 이해가 빠르고 답변이 분명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대우증권 부사장,대우투자자문 사장을 역임했던 이근수 대우레저대표이사는 한국경제신문 편집국장 출신으로 인간관계가 넓다. 친화력과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트레이드마크. OB베어스 사장을 거쳐 두산기업을 맡고 있는 경창호 사장은 연합통신 사회부 차장 출신이다. 기자를 그만두고 OB베어스 부장으로 기업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이미 주업무인 사람관리와 대외업무를 비롯한 일처리가 깔끔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박성철 신원 회장도 창업전인 73년까지 산업경제신문 기자로서 능력을 발휘했다. 당초 일반직으로 입사했으나 업무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곧 기자로 특채됐다. 99년부터 올 1월까지 국정홍보처장과 청와대 공보수석을 역임한뒤 한국가스안전공사사장에 임명된 오홍근 사장은 동양방송과 중앙일보에서 30년을 넘게 근무했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