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거북은 모래 속 깊은 구덩이에 5백~1천개의 알을 낳는다.무더기로 낳은 알에서 부화한 새끼거북들은 어떻게 모래웅덩이를 빠져 나올까? 역할분담과 협력을 통해서다.꼭대기에 있는 녀석들은 천장을 파내고,가운데에 있는 것들은 벽을 허물고,밑에 있는 거북들은 떨어지는 모래를 밟아 다지면서 함께 모래 밖으로 기어 나온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자주 언급한다는 "바다거북론"의 골자다. 과장을 약간 보태면 삼성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 얘기다. 책이나 사내 방송,교육 등을 통해 두루 전파된 탓도 있지만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쉬운 비유이기 때문이다. 바닥거북 얘기 뿐만 아니다. 이 회장이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에게 들은 얘기라면서 전한 "메기론"을 비롯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을 강조한 "기러기론",자기혁신의 필요성에 빗댄 "조개론",위기의식 고취를 위한 "개구리론" 등은 삼성 임직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경영 우화가 된지 이미 오래다. 한번 들으면 쉬 잊혀지지 않는 재미있는 동물 얘기는 말보다 실천이 중요한 혁신 운동엔 아주 유용한 도구다. 동물에서 배우는 지혜를 혁신의 도구로 만드는데는 그룹연수원인 삼성인력개발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회장의 동물론에 뼈와 살을 붙이는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흐름이다. 햇수가 쌓이면서 연수담당 임원들은 동물 세계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갖게 됐다. 고인수 부원장(부사장)과 신태균 상무가 그들이다. 이 회장의 메기론,기러기론 등을 강연과 글을 통해 "전파"하던 이들은 거기에 더해 동물의 지혜에서 경영에 도움되는 통찰들을 찾아내 그룹 전체의 지식도구로 만들어가고 있다. 고 부원장은 지난 93~99년 삼성 회장 비서실 신경영 실천사무국장을 지내면서 이 회장의 "신경영 전도사"로 활약해온 인물. 그는 이 회장이 내놓는 신경영 "화두"를 쉬운 용어로,체계적인 문장으로 다시 풀이해 전사원들의 교육용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동물 경영 노하우를 쌓았다. 지난 99년1월 인력개발원 부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그가 소개한 "1백마리째 원숭이 현상"은 인터넷상에서 "빅 히트"를 친 대표적인 우화다. 그가 운영중인 사이트(www.kosoo.pe.kr)에 최근 소개한 "동물의 세계에서 배우는 혁신의 지혜"는 병아리 얘기로 시작된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면 한마리 병아리가 되고 남이 깨주면 계란 후라이가 된다." 고 부원장은 "지구상에서 살아남은 것은 강한 것이 아니라 변화에 순응한 것들이라는 사실이 다윈의 위대한 발견이었다"며 "동물의 세계를 통해 변화에 순응하는 혁신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신태균 상무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동물의 세계에 관심이 많아 사이트(www.jabsa.com)에 "동물의 왕국" 코너를 만들어 동물에게서 배우는 경영의 세계를 천착하고 있다. 지난 98년에는 연재 내용 일부를 프린트물로 만들어 교육 관련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10마리 정도 원을 만들어 거품을 낸 뒤 한마리씩 돌아가면서 모인 고기를 삼켜먹는 북태평양 흑고래 예를 들며 "혼자 먹고 살기에 충분한 흑고래도 팀워크를 중시한다"는 시사점을 뽑아낸다. 신 상무는 미련하다고 잘못 알려진 곰도 새끼에게 고기를 주기 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사례를 소개한 뒤 "정보화 시대일수록 정보만 주기 보다는 정보를 얻는 법을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의 동물경영학은 과학이론인 프랙탈(fractal)이론과 연계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가 바로 프랙탈이다. 동물의 세계는 자연과 닮은 꼴이요,인간의 세계와도 크게 다를 것 없다는 것. 신 상무는 "우주와 자연의 신비는 사소한 동물의 세계에도 경영의 무한한 원리와 지혜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며 "동물이 생존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익힌 지혜들이 인간 세계에서도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메기론= 미꾸라지를 키울때 메기를 함께 키우면 미꾸라지가 더 통통해진다. 먹히지 않으려고 긴장하고 활발히 움직이고 그래서 많이 먹기 때문이다. 조개론= 조개는 주위가 조용하면 활동하지만 시끄러우면 껍데기를 닫고 움직이지 않는다. 변화를 선도하려면 껍데기를 깨고 나와야 한다. 개구리론= 개구리 눈이 머리에 달린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다. 뒤까지 볼 수 있도록 창조 혹은 진화된 것이다. 동물과 달리 사람은 위기에 민감하지 못하다. 기러기론= 기러기는 편대비행을 한다. 향도가 맨 앞에 날고 나머지는 향도기러기의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 밤에도 향도만 잘 날면 기러기는 길을 잃지 않는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