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보유주식의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관계 당국자의 설명이지만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기업경영을 위축시킬 뿐더러 정부가 기업경영에 간섭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국민연금의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투자기업의 경영정보를 제대로 파악하고 기업오너 등 최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내년 3월,다시 말해 12월 결산법인의 주총시즌부터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인 모양이다. 국민연금의 보유주식 규모가 이미 5조5천억원(2002년11월 현재)에 달하고 내년에는 추가로 4조원 이상 주식을 매입할 계획인 만큼 주식가치를 보전하기 위한 수단이 긴요하다는 것이다. 연금가치를 지키겠다는 의도 자체는 나무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경영에 대한 평가는 주식을 매입하거나 매도하는 방법으로 표현되는 것이 옳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동일한 주식이라 하더라도 보유동기, 즉 자산운용이냐 경영권이냐에 따라 그 성격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연금측은 안건별로 의결권 행사 기준을 정하고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할 기금운용위원회에 대해서는 정부 간섭을 최소화하며 주주권행사 결과도 투명하게 공시한다는 설명이지만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기업외적 잣대에 따라 행사될 수밖에 없고,이는 본래 의도와 달리 시장경제 체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적극적인 배당을 요구해 주식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주장도 꼭 옳지만은 않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은 설립 이후 한번도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음에도 주주 입장에서 가장 만족스런 경영을 한 회사가 됐다. 경영의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과 투자대중 또는 그 대리인(연금)이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바로 이 때문에 투자신탁이나 증권투자회사 등 민간 투자기관들조차 이른바 섀도 보팅(주총 찬반투표 결과에 비례한 표결)을 관행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국민연금은 그 성격부터가 공공성이 매우 높고 자산 운용에서도 '효율성'은 2차적 관심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기업경영을 기업측에 맡기는 것이 전제되지 않고는 결코 창의적인 경영활동을 기대할 수 없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불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