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철새들의 계절 .. 姜萬洙 <디지털경제硏.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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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앙상한 나뭇가지에 찬 바람이 불 때면,내가 태어난 동네 아래 추수가 끝난 황량한 들녘 끝 늪에는 멀리 북쪽에서 철새들이 날아온다.
소년기를 청둥오리 기러기 고니들이 날아오는 그 동네에서 살았다.
겨울 달밤이면 줄지어 하늘 멀리로 '기럭 기럭'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바라보곤 했다.
저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동심은 언제나 궁금했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에 먹이도 다 얼어붙는 땅을 떠나,먹이감 많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오는 철새들을 우리는 귀한 손님으로 대접한다.
고니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기도 한다.
겨울 달밤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는 고향의 아련한 추억으로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청둥오리는 그 고장의 포수들이 총을 쏘거나,동네 사람들이 비상을 놓아 잡았는데 어린 마음에 언제나 안타까웠다.
초등학교 시절 할아버지의 약심부름으로 읍내에 갈 때 늪을 가로지른 들길을 지나면 청둥오리가 놀라 푸드득 하늘로 날던 기억이 난다.
썰매를 타고 얼음을 지쳐 가까이 가도,내가 포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청둥오리떼는 날아가지 않기도 했다.
가까이에서 본 청둥오리의 목에 둘린 초록색 띠는 신비스럽게 빛이 나며 아름답기도 했다.
청둥오리떼에는 항상 한마리 보초병이 있어 고개를 들고 망을 보다가 포수가 멀리 둑길 밑에 숨어 살금살금 기어오면 재빠르게 알아채고 날면 수백마리가 함께 공중으로 날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가끔 총에 맞거나 비상을 먹어 죽은 놈의 깃털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기러기는 달밤에 하늘 높이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만 보이고 늪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왔다던 고니는 그때 벌써 발길이 끊겼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요즘 이당 저당 찾아다니는 정치인들을 두고 '철새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언제나 선거철이 되면 '정치철새들'이 이리 저리 어지럽게 날아다녔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양지를 찾거나,이길 만한 당으로 찾아다니는 정치인들을 언제부터인가 '철새'라고 불러 왔다.
철새가 나쁜 뜻으로 쓰이는 것이 언제나 못마땅했고,나쁜 정치인들에게 철새라는 이름은 분에 넘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름답고 귀한 손님 진짜 철새들을 욕되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
겨울철새들은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남쪽으로 찾아들지만,인간 철새들은 더 따뜻하고 더 많은 먹이를 찾아다니는 욕심 채우기 수단으로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것 같다.
어떤 정치인이 있던 당에서 나가 좋은 자리 다하고 다시 있던 당에 들어가려다가 퇴짜 맞기도 했다.
선거 때마다 당을 바꾼 어떤 철새 정치인은 지금은 어떤 당에 일찌감치 자리 잡아 텃새같이 행세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더 얄미운 '정치철새'다.
진짜 철새들은 봄이 돼 고향을 간다고 아무도 퇴짜 놓지를 않는다.
함께 왔다가 함께 가니 퇴짜 놓을 철새도 없기도 하다.
인간 철새들은 동료를 버리고 자기만 좋은 곳으로 떠났다가 다시 득 좀 보겠다고 찾아드니 남아있던 동료들로부터 퇴짜 맞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어쩌면 그들은 철새 노릇하는 텃새인지도 모른다.
엘니뇨 때문에 기후에 이상이 생겨서 그런지 요즘은 시절을 잊은 '정치철새'도 나타나는 것 같다.
가을에 '강남' 갔던 제비와 봄에 '강북'갔던 청둥오리가 함께 힘을 모아 텃새를 몰아내자는 판을 어우르고 있다.
그래도 제비에게 겨울은 너무 춥고 청둥오리에게 여름은 너무 덥다.
먹이도 다른데 잘 될지 모르겠다.
제비에게는 올 겨울 추위가 너무 일찍 온 것 같기도 하고.
대학 때 즐겨 듣던 흘러간 팝송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가 은은히 흐른다.
'… A man gets tied up to the ground.He gives the world its saddest sound,its saddest sound. Hm Hm'
'정치철새들'은 언제 이 땅에서 멀리로 사라질까.
진짜 철새들이여!
그대들을 욕되게 하는 '정치철새들'을 몰아내라.
텃새 노릇하는 얄미운 '정치철새'도 함께.
그들에게서 철새라는 말을 떼어내라고 데모 한번 해라.
mskang36@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