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의 시작은 고통의 전주곡이었다.' 작년 8월23일, 진념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과천 청사에서 출입기자, 직원들과 함께 조촐한 파티를 가졌다. '국제통화기금(IMF) 졸업'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IMF로부터 긴급 구제금융을 받아 '신탁통치'에 들어간 것이 97년 12월이니 3년10개월 만이었다. 진 부총리는 "IMF로부터 꾼 돈(외채)을 모두 갚고 '경제 주권'을 되찾은 날인 만큼 충분히 자축할 만하다"며 축배를 제의했다. 그러나 당시 참석자중 한 사람은 그 자리를 "1백57조원짜리 파티였다"고 회상했다. 외환위기 원인이었던 지난 30년간의 부실을 쓸어내는데 그만큼의 '청산 비용'이 필요했고, 그 비용은 향후 25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갚아야 할 빚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 타이밍 맞춘 신속.과감한 투입 물론 그 돈이 헛되게 쓰인 것은 아니다. 공적자금이 신속히 투입되면서 '환율 및 금리 급등→기업 연쇄부도→금융 부실→실물 부실→대량 실업→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던 악순환의 고리가 끊겼다. 금융회사들이 정상화되면서 기업 돈줄이 트였고 실물경기가 안정을 되찾자 소비도 되살아났다. 이만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속하고 과감하게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은 평가할 만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환란 당시 공적자금 조성 및 규모 산정 작업을 지휘했던 이종구 금융감독위원회 상임위원(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의 회상.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불이 나는데 물값이 비싸다는 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여야도 이에 공감했다. 그해(97년) 12월20일 국회에 제출한 '공적자금조성 동의안'은 아흐레 뒤인 29일 통과됐다." ◆ 허술한 관리와 모럴 해저드가 문제 문제는 공적자금이 '번개불에 콩을 튀듯이' 급히 조성.투입되면서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년(3∼9월) 감사원의 공적자금 감사에서 밝혀졌듯이 공적자금은 △조성 △투입 △사후관리 △회수 등 각 단계에서 갖가지 부실을 낳았다. 우선 공자금 관리의 난맥상. 재경부(소요 규모 산정)와 금감위(부실 금융회사 지정), 예보 및 자산관리공사(공자금 조성 및 투입) 등으로 분산된 관리체계는 이후 객관성과 투명성 문제를 불러 왔다. 또 조성과정에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면서 신뢰성도 떨어졌다. 정부는 2000년 초 2차 조성이 필요한데도 총선(2000년 4월13일)을 의식, 9월에 가서야 조성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투입시의 '원칙 부재'는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낳았다. 특히 은행과 투신권의 신탁상품 부실을 메우느라 4조4천1백58억원의 공자금이 투입된 후 투자자들은 '자기 책임 아래 투자'라는 원칙을 잊고 손실이 나면 시도 때도 없이 정부를 비난했다. 관리가 허술하다보니 공적자금은 '눈 먼 돈'이나 다름 없었다. 공적자금 투입 금융회사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금융사고가 터졌고 기양건설 성원그룹 등 세간에 회자되는 권력형 사건들도 줄을 이었다. ◆ 효율적인 채권 회수와 원활한 상환이 과제 윤건영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 과제는 공적자금 투입의 원인인 부실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회수할 돈을 제대로 회수하는 것, 상환을 제대로 추진하는 것 등 세 가지"라고 정리했다. 물론 모두 만만치 않은 과제다. 부실책임 문제는 비용과 시간문제로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회수 역시 출자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데 조흥은행 지분 매각에서 보듯 시기 선택, 증시 상황,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 25년간 정부와 금융권이 메우기로 한 69조원의 손실 분담금은 큰 부담이다. 정부는 매년 예산에서 2조원을 공적자금 상환에 투입키로 했다. 그러나 갈수록 통일 및 환경·복지 예산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결국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