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미 연준리(FRB) 의장의 말은 언제나 주목을 끈다. 금융감독 제도에 대한 최근의 언급도 그렇다. 그는 엊그제 미 외교협의회(CFR)에서의 연설에서 "금융기관들이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법을 확보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이 더욱 유연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당국이 금융기관을 과도하게 규제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루 앞선 18일에는 "정책 결정자들이 경제의 복잡성이나 환경 변화를 예견할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을 보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감독당국의 절제와 균형감각을 역설하기도 했다. 지난 1913년 설립된 FRB의 역사를 기술한 'FRB의 역사:제1권' 출판기념 연설에서였다. 그린스펀의 지적을 새삼 장황하게 소개하는 것은 최근들어 국내 금융감독기구들의 시장개입과 간섭이 도를 지나쳐 관치금융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듯해서다. 급증하는 가계 부채를 경계하는 것은 백번 옳다고 하더라도 이틀이 멀다하고 검증되지도 않은 규제책을 한꺼번에 무더기로 쏟아내는 것이나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신용평가기준을 당국이 아무런 논리적 근거 없이 '부채비율 2백50%'등 임의의 잣대를 내세워 강제하고 있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국의 기준은 금융부채가 소득의 2.5배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를 충족하는 사람이 전체 대출자의 40%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보면 설득력있는 이론적 근거도 없는 기준을 내세워 당국이 시장 불안을 부추기는 것과도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 하겠다. 심지어 대출금리에까지 직접 개입하고 있는 듯한 최근의 조치들은 그린스펀이 경고한 바로 그 '과도한 규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는 대출자의 신용등급별로 차등화된 금리를 적용하라고 지시해놓고 바로 다음날엔 서민들에 대해서는 대출 금리를 인하해주라고 상충되는 지시를 내리는 것도 '제멋대로 규제'요 감독권 남용이 분명하다. 재경부 장관이 조흥은행 매각 문제와 관련해 이에 미온적인 경영진을 갈아치우겠다는 식의 엄포를 놓는 것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고 '연체율 15%'라는 임의의 기준을 정해 이를 초과하는 카드회사의 영업을 금지시키겠다는 엊그제 금감원의 발표는 도대체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가.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지만 시장의 실패를 예방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당국의 감독만능적 사고가 역으로 정부의 실패를 초래하지나 않을지 그점이 더욱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