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실(Christmas seal)을 판다. 60~7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이 실을 성탄절 카드나 국군위문편지 겉봉에 우표와 함께 나란히 붙여 사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때론 이성을 그리는 연애편지에 여러 장을 잇대어 붙이기도 했다. 우표가 배달료라면 '실'은 사랑과 애정의 징표였던 셈이다. 크리스마스 실은 당초 결핵환자를 위한 모금운동의 하나로 시작됐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장이었던 아이날 홀벨은 당시 많은 어린이들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연말이 돼 편지와 소포를 정리하면서 이 산더미처럼 쌓인 우편물에 동전 한닢짜리 '실'을 붙인다면 여기서 올린 수익금으로 꺼져가는 생명들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1904년 겨울 마침내 그의 소박한 꿈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캐나다의 선교의사였던 셔우드 홀이 한복 입은 자매와 소나무가 그려진 실을 처음 만들면서 이 운동이 태동했다. 8년 동안 지속된 이 운동은 선교사가 강제추방되면서 중단됐고,대한결핵협회가 53년 창립때부터 이 사업을 인계받아 올해로 50회째를 맞았다. 전염성이 강한 결핵은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병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7천년께 석기시대인의 화석과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미라에서도 결핵 흔적이 나타날 정도이다. 결핵은 아직도 지구상에서 그 기세를 떨쳐 매년 3천2백만명을 죽음으로 내몬다고 한다. 국내의 경우는 활동성 결핵환자가 무려 22만여명이며 지난해만도 3천2백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결핵은 우리 국민의 사망순위 10위이며,결핵사망률은 OECD 가입국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기도 하다. 실 판매는 결핵퇴치에 쓰이는 재원마련을 위한 것인데 올해는 학생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호응이 전에 없이 시원찮다고 들린다. 요즘은 e메일을 사용하는 탓에 편지를 쓰지 않아 실이 무용지물이라고 둘러대지만,2백원짜리 실 한장이 바로 이웃사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주저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