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경주 보문단지내 웰리치조선 호텔은 일종의 '통일구(區)'였다. 남쪽 산업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내려온 18명의 북한 고위급 경제시찰단과 이들을 맞이한 남쪽 인사들 사이에선 더 이상 '분단의 간극'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의근 경북도지사는 "누가 북쪽(인사)이고 누가 남쪽인지 전혀 모르겠다"며 분위기를 띄웠고, 북쪽 단장인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은 "뜨거운 환영에 민족애를 느낀다. 지혜있는 사람은 지혜로,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세계 누구도 당할 수 없는 통일된 조국을 만들자"고 화답했다. 참석자들은 그날 술잔을 돌리면서 형.아우가 됐고 '아리랑' '고향의 봄'을 합창했다.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조국은 하나'를 연호했다.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대중 정부는 많은 난관 속에서도 일관되게 '햇볕정책'을 추진했고 그 결과 인도적·경제적 차원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외환위기 사태와 미국의 '악의 축' 발언, 북한의 '핵개발 시인' 등 남북관계에 걸림돌도 많았지만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꾸준히 확대한 결과 경주에서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 ◆ 경제적 효과도 적지 않다 권태신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은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은 남북간 긴장관계를 신용평가 때마다 고려한다"며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가 안정되면서 4년 만에 국가신용등급 'A' 등급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S&P는 환란 직후 'AA-'에서 'B+'까지 한국 신용등급을 무려 10단계나 내렸다가 다시 7단계 위인 'A-'까지 끌어올렸다. 신용등급이 1단계 오를 때마다 약 5억달러의 자금조달 비용이 준다는 재경부의 추정을 감안하면, 그동안 약 20억∼30억달러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둔 셈이다. 또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착공, 경의.동해선 연결 등 굵직한 경협건들이 잇달아 합의되면서 우리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게 됐다. 특히 북한은 최근 남쪽 자본과 기술 등을 겨냥한 '개성공업지구법'을 발표, 남쪽 기업들이 북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 절차의 투명성 미흡이 문제 그러나 이같이 적지 않은 성과에도 불구,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투명성이 결여됐다는 비난을 달고 다닌다. 이부영 한나라당 의원은 현대상선의 4억달러 대북지원설(說)과 관련, "남북관계 개선은 필요하지만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현 정권이 정치적 소득을 위해 경협을 서둘러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며 "4억달러 대북지원설의 진실을 현 정권 내에서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투명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은 '퍼주기 논란'도 야기했다. 정부는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50만t의 쌀을 북에 보냈다. 그러나 정부가 이를 발표한 것은 10월4일이었는데 바로 그 다음날인 5일, 이미 남포항에서는 하역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쌀 지원이 국민동의 없이 정부 차원에서 극비리에 서둘러 진행됐다는 얘기다. 조동호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팀장은 "쌀을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라 차관 형식이었고 남쪽에서 보낸다는 것을 표기하는 등의 조건을 달았던 만큼 얼마든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며 "쫓기듯이 지원하는 바람에 퍼주기식 지원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 제도적 장치 마련과 정책 일관성이 관건 조명균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은 향후 남북경협 과제로 △핵문제 해결 △합의사항의 지속적 추진 △제도적 장치 마련 △대북정책의 일관성 견지 등을 꼽았다. 특히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조속히 해결되지 않는 한 전쟁 위협 등의 불안요인 때문에 기업들의 대북 투자를 이끌어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또 대북 투자를 기획하고 있는 기업들은 '정경분리 원칙'에 따른 지속적인 경협의 제도적 장치(투자보장 등 4대 경협합의서 발효) 마련 및 성공적인 대북투자 수익모델 마련 등이 투자 부담을 줄여주는 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