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유통위원회가 내년도 추곡수매가를 건의하면서 3% 인상안과 2% 인하안을 동시에 내놓은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소비자 대표와 생산자인 농민단체 대표가 함께 참여하고 있어 어차피 어느 한쪽의 목소리만 대변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난상토의를 거쳐 결론을 내려야지, 올리려면 올리고 내리려면 내리라는 식의 방향감각도 없는 건의를 한 것은 양곡유통위의 역할과 책임을 스스로 포기한거나 마찬가지다. 내후년 쌀시장 추가개방 협상을 앞두고 아직까지 이렇다할 대책은 고사하고 정책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딱한 '농정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라고도 볼 수 있어 더욱 씁쓸하다. 양곡유통위측은 가뜩이나 농가사정이 어려운데다 태풍 등의 영향으로 올해 쌀 수확량이 작년보다 10% 정도 감소해 수매가를 내리기는 어렵고,그렇다고 내후년 협상을 앞두고 수매가를 올리는 것도 적절하지 않아 복수안을 건의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농업이 처한 위기상황을 감안하면 이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없으며, 연말 대선을 앞두고 이런저런 눈치만 본다는 느낌이 두드러진다. 이는 "올해 양곡유통위는 예년과 달리 쌀 수매가와 수매량에 매달리지 않고 농촌과 농민을 살릴 근본대책을 수립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했던 성진근 양곡유통위 위원장의 취임 발언에도 정면으로 어긋난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번 수매가 건의에서 우리가 문제삼는 것은 몇%를 올리느냐 아니면 내리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위기에 직면한 우리농업의 심각성을 외면했다는데 있다. 일본은 물론이고 대만도 내년부터 쌀시장 관세화를 시행하기로 결정한터라 내후년 협상에서 국내 쌀시장의 관세화 유예가 연장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관세화를 실시할 경우 최고 관세율은 3백60% 정도인데 비해, 현재 국내외 쌀값 격차가 5~7배에 이르고 있어 국내 쌀농사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농림부는 미봉책에 불과한 수매가 인상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우리 농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마땅하다. 양곡유통위 스스로 건의했듯이 양곡유통위를 없애는 건 물론이고,현행 수매가 국회동의제 역시 폐지하도록 양곡관리법을 개정해야 한다. 농협 미곡종합처리장 중심의 폐쇄적인 기존 쌀 유통구조를 경쟁체제로 바꾸고, 시장자율로 쌀 수급을 조절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농가소득 보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소득직불제나 휴경보상제 시행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