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누구를 위한 수능인가? .. 白淳根 <서울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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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서 시행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대수능)의 성적이 예년보다 낮아져 공교육에 대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고,동시에 총점에 따른 석차를 공개하지 않아 일선학교에선 입시지도에 어려움과 혼란을 겪고 있다.
불행히도 일부에서는 현 사태에 대해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예컨대 대수능 성적의 석차가 중요하기 때문에 난이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또 대수능의 총점에 따른 석차 공개와 관련해선 그것이 대학의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가 공교육에 대한 불신 혹은 붕괴를 가속화시키고,사교육에 대한 맹신을 촉진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난이도 문제에 대해 살펴보면,대수능은 자격고사가 아니기 때문에 석차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선학교에서 정상적으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어려워 맞히지 못하는 문제가 많이 출제된다면,학생들은 어디서 교육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겠는가.
학교에 대한 선택이 자유롭지 못한 현 상황에서는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며,그것은 공교육의 붕괴와 사교육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다.
일부에서는 대수능 성적이 낮아진 것에 대해 학력저하 운운하면서 학생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일선학교에서 정상적으로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없는 한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탓할 수는 없다.
학력저하와 무관하게 일선학교에서 정상적으로 교육과정을 이수했다면,대수능은 주어진 시간 안에 모두 풀 수 있는 정도의 문제로 구성돼야 할 것이며,그렇지 않는 한 공교육에 대한 불신 혹은 붕괴는 불가피한 현상이 될 것이다.
많은 재학생들이 재수를 선택하겠다는 반응은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는 사례 중 하나다.
그리고 석차에 대한 정보공개 문제에 대해 살펴보면,비록 대입전형방법이 다양해지기는 했지만 현 제도 하에서는 아직도 대수능 성적에 따른 석차가 가장 중시되고 있다.
즉 그것이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하는데 참고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보라는 것이다.
국가가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학교나 수험생들은 그 정보를 나름대로 수집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여건이나 상황에 비춰 볼 때 그와 가장 유사한 정보를 입시학원들이 먼저 입수하게 될 것이며,입시학원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근거해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상황에서 대입전형은 학생 개인으로서는 인생의 진로가 결정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기 때문에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정보 제공자가 일선학교가 아니라 입시학원이 될 경우 학생들은 학교보다 학원을 더 평가할 것이다.
이 또한 공교육에 대한 불신 혹은 붕괴를 가속화시킬 것이며,사교육에 대한 맹신을 촉진시킬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입시학원이 제공하는 소위 '배치표'를 진로지도 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는 사례 중 하나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누구를 위한 대수능인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대수능이 과연 공교육의 내실화에 기여하고 있는가. 혹시 사교육을 조장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아닌가.
국가에서 전국 공통으로 시행하는 대수능이 공교육의 내실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일선학교에서 정상적으로 공부한 학생이라면 모두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출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수능이 자격시험이 아니라 석차가 중요한 시험인 만큼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국가가 일선학교에 제공해야 한다.
만약 대수능을 준비하기 위한 지식이나 입학원서를 제출하기 위한 정보가 일선학교를 통해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고,사설학원을 통해 학교 안으로 흘러들어 가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공교육에 대한 불신 혹은 붕괴는 가속화될 것이다.
최근 공교육에 대한 불신 혹은 붕괴에 대한 우려가 점차로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국가가 전국 공통으로 시행하는 대수능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절실히 요청된다.
dr10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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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