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의 '2002년 세계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21위다. 지난해보다는 조금 올랐다지만,중국은 39위에서 33위로,일본은 20위권에서 13위로 뛰어올랐다. 중국은 요즈음 워낙 잘 나가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이 크게 뛰어오른 것은 주목할 만하다. 흔히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되는 일본 경제의 장기 정체에 비추어 보면,일본의 순위 상승은 의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는 예견된 결과다. 일본이 정부나 공공부문에서는 비효율성을 크게 개선하지 못했지만 기업부문에서는 그간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혁신을 이루어 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주요 대기업들은 수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으면서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매출액의 6∼7% 선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땠는가. IMF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은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가장 먼저 연구인력과 연구비를 감축하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국가적인 R&D 인프라가 손상되고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도 심화된 것이다. WEF 보고서에 따르면 부문별 경쟁력에서 우리나라의 기술경쟁력 순위는 18위다. 또 다른 기관의 국가경쟁력 조사 보고서에서는 국민 1인당 R&D 투자 순위가 20위다. 우리의 무역규모는 세계 13위다. 그러나 어떤 조사보고서도 우리의 국가경쟁력을 13위로 보아주지는 않는다. 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순위 21위에 가장 근접한 것이 기술경쟁력이나 R&D 투자 비중이다. 즉 기술력이 바로 국가경쟁력이란 뜻이다. 우리 경제의 외형은 13위이지만,그에 걸맞은 내실을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수출은 늘었지만 수출입 단가를 대비하는 교역조건은 많이 떨어지고 있다. 제품의 기술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같은 제품이라도 높은 값을 못 받는 것이다. 아직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부침에 따라 울고 웃는 것이 우리의 수출구조다. 현재 자동차 철강 조선 통신기기 등 분야에서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는 있지만,5년 내에는 중국이 반드시 추격해 올 것이고,그때는 현재와 같은 기술수준과 높은 비용체계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될 것임이 자명하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산업기술의 로드맵(roadmap)과 기술 등고선을 면밀히 작성해 우리가 취약한 분야가 무엇이고 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지를 밝혀야 한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지난 9월 산업자원부는 산·학·연의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향후 우리 산업이 나아가야 할 비전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으로 '2010 산업비전,산업 4강으로의 길'을 제시한 바 있다. '2010 산업비전'은 과거의 생산요소 투입형 성장전략에서 벗어나 고기술·고생산성·고부가가치 중심의 혁신주도형 성장전략으로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개발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기술인프라 확충이 절실하다. 또한 기술의 이전·사업화를 촉진하고,기술개발과 인프라 조성간 연계를 강화해 기술혁신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관련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기술관련 지원기관들을 한 데 모아 정보와 지식을 집적화하고 민·관의 혁신역량을 결집하는 촉매역할을 수행할 한국기술센터(KOTECH)가 최근 건립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한국기술센터의 건립으로 산업기술 유관 기관간 긴밀한 협력 네트워크가 구축되고,산업기술계에 일괄 서비스(one roof service)가 제공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술혁신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경제가 선순환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는 성장의 열쇠이자,경제 성장이 지속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성장의 엔진이다. 그러나 R&D는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야만 그 결실을 기대할 수 있다.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어느 한 부문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혁신이 이루어진다. R&D 투자 비중 세계 20위와 국가경쟁력 21위는 거의 등식이다. 씨 뿌리지 않고 수확을 기대할 수는 없다. 기술 나라만이 작지만 강한 '경쟁력 있는 나라'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