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시간은 늘 거기에 있다 .. 金美賢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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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12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일 바쁜 사람은 대선주자들일 것이다.
가장 갖고 싶은 것이 유권자들의 마음과,다른 사람들의 시간일 정도로….
하지만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다.
그것을 48시간으로 늘리느냐 12시간으로 줄이느냐가 그들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다.
평범한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도 그들에게 빌려줄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시간들이 있다.
언제나 분초를 다투며 사는데도, 해야 할 일은 늘어만 간다.
'나중에' 한번 만나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의 '나중'이었다.
이처럼 황금은 돌처럼 볼 수 있지만,시간은 돌처럼 볼 수 없는 시대에 살아서인지,최근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단순하게 살아라'라는 책이 올라 있다.
초등학생조차 아버지가 일하는 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해야 하는 현실을 참지 못하고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다며 자살을 하는 시대이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조사에 의하면, 남부럽지 않게 바쁘고 피곤할 청와대 직원들이 많이 읽는 책이기도 하단다.
'여러분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쓰레기다'라는 과격한 광고문구에 불안감과 동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대개 우리는 바쁘게 사는 것이 정상이고, 덜 바쁘게 사는 것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처럼.
그러나 사람들이 하는 일의 20%가 성공의 80%를 차지한다는 지적을 보면 아찔해진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의 80%는 거의 소용이 없는 일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하기야 바쁠 때만 바빠야 하는 것이 정상이고,변하는 것이 바로 사랑의 일반적인 속성이다.
기계만이 쉬지 않고 일할 수 있고, 중독증이나 편집증 환자만이 항상 사랑을 생각한다.
기계도 간혹 쉬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고, 변하지 않는 사랑은 오히려 부담스럽다.
'단순하게 살아라'에서 제시하는 원칙도 결국은 할 일을 줄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완벽하려고 하지 말고 만족하려고 노력할 것, 당당하게 '아니오'라고 거절할 수 있을 것, 혁명이 아니라 발전을 원할 것, 약점과 싸우지 말고 장점을 부각시킬 것 등의 생산적인 제안을 내놓고 있다.
시간을 관리하지 말고 자기자신을 관리하라는 의미다.
'파킨슨 법칙'이란 것이 있다.
관리의 수는 일의 양과 관계없이 일정한 비율로 불어난다는 것, 그리고 일이란 것은 언제나 할당된 시간의 끝부분까지 연장된다는 것을 지적한 용어이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많이, 그리고 빨리 일을 해도 일이 줄어들기는커녕 다른 일을 또다시 해야 한다면, 그리고 아무리 일을 미리 처리해도 그에 사용되는 에너지가 절약되는 것이 아니라면 일을 잘한다고 해도 소용없는 것이 아닌가.
나처럼 막판의 마지노선까지 가서야 간신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될 만한 이론이다.
한동안 '느림'의 미학을 통해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옹호됐었다.
'단순함'은 '느림'의 원리가 확대되고 변형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느림이 절대적인 느림이 아니라 원할 때 원하는 만큼의 느림이었듯이,단순함도 무식하고 뻔뻔한 안면몰수가 아니라 복잡함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처리하는 행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더 교묘하고도 고급한 관리의 수단이 될 위험이 내장돼 있기도 하다.
노력하고 배워서 단순해져야 한다면 그 자체도 억압일 테니까.
더 많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라면 그보다 더한 복잡함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미카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 모모가 말하듯, 시간은 항상 거기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음악과 같은 것이다.
시간도둑들이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갈 때, 그래서 사람들이 시간 강박에 시달릴 때는 시간을 절약하면 할수록 오히려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남의 탓을 할 수 없게 하니까.
그리고 단순하게 사는 것은 시간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나눠주는 것, 붙잡는 것이 아니라 잘 흘려보내는 것을 말하니까.
다가오는 연말이 시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러니 '열심히 일한 당신, 단순해져라'.
金美賢 < 문학평론가.이화여대 교수 penovel@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