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이 좋았다. 여행을 떠날 때는 따로 책을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세상이 곧 책이었다. 기차 안이 소설책이고 버스 지붕과 들판과 외딴 마을은 시집이었다. 책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것은 시간과 풍경으로 인쇄되고 아름다움과 기쁨과 슬픔 같은 것들로 제본된 책이었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의 시인 류시화는 여행광이다. 특히 인도 티베트 등지를 주로 여행한다. 그는 자신이 인도의 수도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유 본질 깨달음을 찾아 여행지를 헤맨다. 그런 류시화가 여행에 관한 산문집 '지구별 여행자'(김영사, 9천9백원)를 냈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이후 5년만에 출간한 두번째 산문집이다. 이 책은 저자가 15년에 걸쳐 인도 대륙을 여행하면서 얻은 삶의 교훈과 새로운 깨달음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깨달음이라고 해봤자 버스 지붕 위에서 만난 노인, 신발 도둑, 머리에 소똥을 묻히고 다니는 수도승 등에게 얻은 것이지만 어떤 철학자나 성자로부터 얻은 깨달음보다도 신선하고 지혜롭다. 이 책에 실린 37편의 에피소드들은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책 전체에 걸쳐 흐르고 있는 화두는 역시 사랑이다. 저자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문둥병 환자의 손을 잡아주고 눈이 맑은 17세의 소녀는 앓아 누운 저자를 위해 반딧불이를 잡아다준다. 한 늙은 수도승은 탈레스에서부터 현대 물리학의 소립자 이론까지 물질의 최소 단위에 대해 설명하는 저자에게 "물질의 최소 단위는 다름아닌 사랑"이라고 단언한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