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금융읽기] 新엔저 정책,과연 효과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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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국제외환시장,특히 엔·달러 환율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올 9월 이후 엔·달러 환율은 이상한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1백20엔∼1백23엔 범위대에서 안정된 흐름이 유지됐다.
이런 흐름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이달 들어서부터다.
느닷없이 일본 시오카와 재무상이 엔·달러 환율의 적정 수준은 지금보다 30엔 정도 높은 1백50엔∼1백60엔이라는 발언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 발언이 나온 후 국제외환시장에 일파만파 의 영향을 미치자 시오카와 재무상은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다.
그러나 구로다 재무차관의 엔저를 용인하는 발언이 이어 나오면서 파장은 지속되고 있다.
최근 들어 일본 경제각료들이 잇달아 엔저 정책을 추진할 뜻을 비추는 것은 그만큼 일본경제가 어렵고 정책수단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콜금리는 '제로' 수준이다.
침체된 증시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는 통화정책이 무력화된 단계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은행의 하야미 총재까지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지면서 통화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재정정책도 사정은 통화정책과 마찬가지다.
올 9월말 현재 일본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는 국민소득(GDP)의 각각 11%,1백32%에 달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는 새로운 재원을 마련해 경기를 부양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 처리문제도 그동안 모든 수단을 동원했으나 오히려 부실채권 규모는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고이즈미 총리의 전격적인 지원하에 밀어붙이고 있는 다케나카 헤이조의 부실채권 처리방안도 정치적 저항에 밀려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엄격히 따진다면 엔저 정책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해 이맘 때도 추진한 적이 있었다.
문제는 앞으로 엔저 정책을 추진할 경우 일본 정부가 의도하고 있는 경기부양에는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전제는 엔저 정책에 따라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수출이 일본 국민소득(GDP)에서 차지하는 기여도가 높아야 한다.
불행히도 일본 GDP의 총수요 항목별 기여도를 보면 수출은 9%밖에 안된다.
일본경기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수출이 아니라 GDP 기여도가 66%나 되는 일본 국민들의 소비가 살아나야 가능하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엔저 정책을 추진할 경우 일본내 자금과 기업의 해외이탈을 촉진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일본내에서는 자본과 제조업의 양대 공동화를 심화시켜 일본경기는 더욱 침체되는 자충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인접국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엔저 정책으로 개선된 경쟁력은 자체적인 노력에 의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한국을 비롯한 인접국들의 경쟁력을 빼앗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론적으로 어떤 나라가 자국의 통화가치를 내려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근린(近隣) 궁핍화 정책'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만약 이런 특성을 외면하고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엔저 정책을 고집할 경우 인접국과의 통화마찰 및 통화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인접국들은 일본의 엔저 정책에 따라 경쟁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엔화가치를 내린 폭만큼 인접국들도 자국의 통화가치를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무엇보다 수출에 악영향이 우려된다.
흔히 우리 수출을 엔·달러 환율에 의존하는 '천수답(天水畓) 구조'라 부른다.
엔화가 강세를 보일 때는 수출과 경기가 살아나고 엔화가 약세를 나타내면 수출과 경기가 둔화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이 될지 모르나 엔저 정책은 원화 환율에도 상당한 영향이 우려된다.
추정기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최근 원화와 엔화 환율간의 동조화 계수를 구하면 0.90을 넘을 정도로 엔화 환율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다행인 것은 이번에 엔저 정책을 추진할 경우 일본 정부가 의도하는 경기부양 효과보다는 양대 공동화와 인접국들의 반발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본이 엔저 정책을 들고 나오더라도 엔·달러 환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엔·달러 환율 상승세가 제한된다면 원·달러 환율도 지금 수준보다 크게 높아질 가능성은 비교적 낮아 보인다.
연말을 앞두고 엔저 정책에 따라 원화 환율이 오르는 것이 아니냐고 고민하는 국내 기업인들과 해외유학생을 둔 부모들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