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라는 국가가 앞으로 20년 동안 어떻게 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지난 11월 24∼26일 WEF(World Economic Forum)가 주최한 IES 2002(Indian Economic Summit 2002)에 다녀왔다. 나는 공동의장으로서 인도가 20년간 8% 지속 성장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세션과 제조업 육성을 위한 정책세션, 교육문제세션, 그리고 정부 사회단체 기업간의 협조체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세션의 좌장을 맡았기 때문에 인도 내부사정과 희망 등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인도는 지난 91년 이후 꾸준히 6%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인구 10억의 세계 제2 인구대국이다. 특히 최근 10여년간 소프트웨어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해 지금은 전세계 소프트웨어 생산기지의 지위를 굳혔다. 이러한 밝은 면이 있는가 하면,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수억 인구와 낙후된 산업 등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의 경제에 익숙한 나에게는 몇가지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첫째, 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불과했고, 무역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3%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상식대로 한다면, 산업 특히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으며, 산업전체에서는 수출전략이 산업발전의 핵심전략이어야 하는데 우리와는 매우 달랐다. 둘째, 장기적인 안목이었다. CII(Confederation of Indian Industry)와 WEF가 공동으로 인도의 발전시나리오를 만들었다. 5.5% 6.5% 8% 세종류의 경제성장을 앞으로 20년간 지속할 수 있는 정책방안을 제시했다. 이 문제들은 각부 장관 참여하에 3일간 논의, 문제점과 방책이 도출됐다. 그런데 인도사람들의 공통된 걱정은 정치나 행정이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비관적인 전망이었다. 이제 눈을 돌려 한국을 생각해 보자.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우리나라는 인도처럼 20년이라는 긴 장래를 놓고 상.중.하 3개의 모델이 제시된 것을 본 일이 없다. 또 인도처럼 제조업 금융업 등 중요분야에 걸쳐 상.중.하 3개의 시나리오를 놓고 20년간 해야 될 전략이 무엇인지 논의된 것을 본 일도 없다. 더구나 이러한 문제들을 각부 장관과 민간기업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흘씩이나 토의한 것을 본 적이 없다. 해야 할 일과 장애요인이 무엇인지 밝혀낸 것을 본 일이 없다. 이번 대통령 선거 기간을 통해 많은 선거공약들이 제시됐고, 그것을 둘러싼 정책 공방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발표에 지나지 않았고, 그에 대해 며칠을 두고 각계가 모여 논의하는 진지한 토론은 계획된 바가 없는 듯하다. 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선거에 이긴 당이 경제정책에 대한 장기 비전과 전략을 내놓고 민간기업 대표들과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과 함께 사흘정도 시간을 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이냐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 어떤 저해요인들이 있는가를 분석하고,실천가능한 방안을 찾아내는 시도를 했으면 한다. 우리도 3개의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 특별한 개혁 없이 현 경제의 메커니즘을 유지하는 경우다. 3∼4%의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으나, 제조업이 중국으로 옮겨가 결국은 심각한 실업난을 겪게 되고, 우리경제가 활력을 잃어가는 경우가 그 하나다. 둘째는 정부가 인심 후한 사회복지정책을 채택해 우선 쓰고 보는 정책을 택한 나머지, 국가재정이 어려워지고 불만세력은 반대로 끊임없이 요구수준을 높여 외국자본이 이탈해, 점차 아르헨티나와 같은 어려운 처지로 가는 경우다. 셋째는 7%의 고도성장을 지속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는 인기에 구애되지 않고 정부가 이를 악물고 쓰는 일보다는 경제 살리는 일에 먼저 투자하고 과감하게 개혁을 이루어내야만 가능하다. 특히 제조업 다음에 올 지식산업을 중국이 따라오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그리고 과감하게 육성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의 소프트웨어 생산기지가 돼야 하며, 생명과학 등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재래산업의 생산성을 단기간에 두배로 올리는 획기적인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 이런 시나리오로 한국이 갈 수 있으면 얼마나 다행일까? < julie@trigem.c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