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산인플레는 누구 책임?..오이겐 뢰플러 <하나알리안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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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겐 뢰플러 <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 사장 >
각국의 통화정책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변화를 거듭했다.
중앙은행은 통화주의의 영향으로 물가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여기게 됐다.
물가안정은 제 기능을 다하는 시장 시스템과 높은 경제성장, 그리고 금융안정의 필수조건으로 여겨졌고,1990년대는 마치 이 명제의 시연장(試演場:showcase) 같았다.
낮은 인플레이션은 생산성 향상과 높은 경제성장을 동반했다.
그러나 아시아 외환위기에 이은 세계증시 거품 붕괴는,'낮은 인플레이션은 금융불안정을 막기에 충분하다'는 신념을 사라지게 했다.
이후 중앙은행이 물가뿐만 아니라 자산 인플레이션까지 예방할 책임을 지녀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자산 인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 증시 거품과 관련 있다.
그러나 증시 거품은 미리 진단하기 매우 어렵다.
게다가 자본시장은 자유시장 시스템의 토대인데,증시의 운명까지 결정하는 권한을 중앙은행에 부여한다면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을 경악하게 할 것이다.
통화주의는 간섭 받지 않고,시장이 혼란 없이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통화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신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자산 인플레이션을 예방한다는 것은 간섭과 다름 없는 것이 된다.
하지만 자산거품으로 시작해서 디플레이션,금융불안정과 심각한 불황의 위험으로 끝나는 악순환의 위험성은 극단적인 자유시장 옹호자들의 주장을 일축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일본경제가 이를 보여준다.
최근 BIS(국제결제은행)의 보고서는 자산거품과 금융불안정의 관계를 조명해 주고 있다.
실증적 증거에 비추어 볼 때 금융시스템과 실물경제에 큰 부담을 초래하는 원인은 자산거품 그 자체가 아니라,과다한 신용확대와 자산 인플레이션의 결합이다.
지난 40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신흥시장의 위기는 물론,일본 미국 영국 북유럽국가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나타난 양상이다.
폭등하는 자산가격 및 때로는 막대한 규모의 기업투자와 함께 빠른 신용증가는 금융위기의 가장 중요한 지표다.
'낮은 인플레이션만으로 중대한 금융문제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1980년대 말 일본경제가 곤란을 겪기 전,일본은 사실상 거의 제로에 가까운 낮은 인플레이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국 또한 1990년대 인플레이션이 하락해 외환위기 직전엔 4% 이하로 떨어졌었다.
신용 폭증, 그리고 자산과 투자의 거품이 결합하면서 일으킬 수 있는 위협에 비하면,높은 인플레이션은 부차적 문제로 보인다.
사실 중앙은행의 정책성공은 문제를 되레 악화시킬 수도 있다.
만약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하는데 성공,물가 안정성을 지켜주는 믿을 만한 보증인이라면 사람들은 더욱 안심할 것이다.
그리 되면 1990년대 미국이 경험한 것 처럼,인플레이션 없는 경제성장에 대한 과잉신뢰로 인해 자산가격의 상승과 과잉투자가 조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가격이든 주가든,문제의 핵심은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자산이 부풀려진 가격에 대출의 담보로 사용되거나,부채로 자금을 조달해서 자산을 구입했다면,자산 인플레이션과 뒤따르는 거품의 붕괴가 엄청난 문제를 야기시킨다.
금융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over-leverage(과잉 지렛대 효과)다.
따라서 지금 나서야 할 곳은 중앙은행이나 통화당국이 아니라 금융감독기구다.
중앙은행이 증시와 부동산시장 최종 검열에 나서야 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금융당국의 슬기로운 규제가 필요하다.
부실채권 및 요주의 여신의 엄격한 분류,충당금 규정을 포함한 신중한 대출 관행의 집행이 요구된다.
심지어 은행들로 하여금 회생 불가능한 기업들에 계속 대출해 줄 것을 권하기도 하는 경제정책 입안자들이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금융위기 예방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 바람직한 금융 규제뿐만 아니라,더 훌륭한 기업지배구조와 가계 기업 금융회사 모두 철저한 위험평가에 근거를 둔 신중한 의사결정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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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